통신사의 진료에 관한 필담과 진단에 관한 내용
〃 위 겐야호인에게 삼사들이 진맥을 부탁하셨을 때 처음부터 [자신의] 병증을 말하지 않고 겐야의 판단으로 병증을 말하도록 했다. 겐야가 맥을 짚은 뒤에 병증을 말했더니 [실제 병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삼사가 대단히 칭찬하시고, 치료와 그 외 삼사 친척들의 병증까지 필담으로 전하며 치료 소견과 약의 조제등을 부탁했다.
그 필담의 대략
부모가 오랫동안 병을 앓아 천하의 명의를 널리 찾았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고명(高明)한 의원을 만나 가르침을 간절히 구합니다.
제가 두루 여러 의원들에게 병에 관해 물었지만 대답이 같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중국의 명의를 만났고, 또한 우리나라에 명의가 있어 말하길, 효능이 강한 약제(峻劑)를 쓰면 안 되고 육군자탕(六君子湯)을 써야 한다고 했는데 고명한 의원이 말하는 바가 이와 같습니다. 천하의 명의의 소견이 같습니다. 고명한 의원은 넣는 약재가 매우 뛰어나며 병의 원인에 적중했습니다. 이미 저절로 오랜 병이 나은 듯했습니다. 지시한 약은 하나하나 가르침에 따랐으며, 그리하여 맛을 덜 중시하고 담백하게주 410 조제된 아주 좋은 약이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의원이 예로부터 적지 않아 다 셀 수 없는데, 근래 수십 년 동안 양예수(楊禮壽)주 410의 『의림촬요(醫林撮要)』,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주 410
각주 410)

같이 고명한 것은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귀국에 『부상집(扶桑集)』주 410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누가 저술한 것이며, 침구(鍼灸)에 관한 것입니까? 약 복용에 관한 것입니까? 내게 『신응경(神應經)』주 410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귀국에서 우리나라에 보낸 것이 아닙니까? 옛 법과 다른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1610년(광해군 2)에 완성하여 1613년 내의원에서 목활자로 첫 간행된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 이 책은 원래 1596년(선조 29)에 태의(太醫) 허준이 왕명을 받아 유의(儒醫) 정작(鄭碏), 태의 이명원(李命源)·양예수(楊禮壽)·김응탁(金應鐸)·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찬집했는데,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그 뒤 선조가 허준에게 다시 명하여 계속 편집하도록 했다. 허준이 1610년에 마침내 완성하자, 왕은 곧 내의원에 명하여 인출(印出), 널리 반포하게 하였다. 책 제목의 ‘동의(東醫)’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 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이란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
양가(兩家)의 서(書)가 매우 많아 지금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다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조만간 쓰시마로 돌아가 공(公)의 말을 빌어 선인의 방술(仙方)을 얻고 부모의 병을 고친 후에 후한 뜻에 사례하겠습니다. 공은 모아서 책을 만들어 보내주십시오. 저와 두 명의 이름이 만국(萬國)에 전해지면 어찌 부질없는 것이겠습니까?
이 근래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데,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한스러우며 말을 나누는 것도 어찌 의방(醫方)뿐이겠습니까?
오늘 당신을 만난 것은 하늘의 도움입니다. 말하는 바가 지고하고 진맥하는 방법은 심묘(甚玅)하니, 옛 편씨(扁氏)주 410와 창공(倉公)주 410이 어찌 뛰어넘겠는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게 합니다. 이미 병의 풍기와 화기는 말씀하셨으니 치료법을 듣고 싶습니다.
타향에서 응대한 것이 천 명, 만 명 뿐만 아닌데, 저의 마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호인뿐입니다. 호인께서도 아침저녁으로 저를 보시고, 또한 아침 저녁으로 만날 뿐입니다. 더구나 저는 병을 앓아 큰 의원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글을 써서 보여주니 힘껏 애를 써주는 한마디 한마디에 저절로 오랜 병(沉痾)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저는 기백(岐伯)주 410을 잘 모르나 더욱 편작(扁鵲) 이하 여러 사람이 모두 진맥으로 [병의 근원을]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고, 그리하여 또한 다른 것들도 살핍니다. 지금 저는 오직 호인의 말로만 병을 고치니 그것은 실로 소위 하늘이 내려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후의(厚意)를 거듭 되돌아보고 여태까지 보답을 못하고 짧은 편지를 간략하게 보내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어찌 그치겠습니까? 청구(靑丘)주 410
말씀하신 뜻은 매우 지당하며 다만 제가 앓는 병의 근원이 나오는 곳을 모르겠는데, 간혈(肝血)이 부족하여 담화(痰火)주 410가 왼쪽으로 흘러 들어간 것입니까? 간은 피의 근원이니 어혈(瘀血)주 410이 그 근원을 따라 간으로 돌아간 것입니까? 왼쪽은 노화(怒火)를 따르므로 간담(肝膽)주 410의 기(氣)가 우울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병의 근원을 듣고 싶습니다. 소위 울적함으로 인해 병을 얻는다는 것은 매우 지당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칠정기화(七情氣火)주 410에 연유한 것인지 울적하고 막힘이 있습니다. 다만 산기(疝氣)주 410에 관한 이야기는 왜 쌓이는 것인지 알지 못하니 이 또한 두렵습니다. 아직 [병이] 모습을 이루지 않았다면 서둘러 이를 고치고 싶으나, 다만 지금은 이미 세월이 흘러 이미 모습을 이룬 것이 아닙니까? 저는 팔이 굽었고 간혹 얼룩점이 보이기도 한데, 오늘 고귀한 의견을 듣고 오랜 병이 사라진 것 같으니, 이 어찌 기백(岐伯)이 사람의 몸 안(臟腑)주 410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매우 놀라워서 [저의] 무릎 앞이 [호인이 앉은] 자리로 다가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 각주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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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410)
1610년(광해군 2)에 완성하여 1613년 내의원에서 목활자로 첫 간행된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 이 책은 원래 1596년(선조 29)에 태의(太醫) 허준이 왕명을 받아 유의(儒醫) 정작(鄭碏), 태의 이명원(李命源)·양예수(楊禮壽)·김응탁(金應鐸)·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찬집했는데,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그 뒤 선조가 허준에게 다시 명하여 계속 편집하도록 했다. 허준이 1610년에 마침내 완성하자, 왕은 곧 내의원에 명하여 인출(印出), 널리 반포하게 하였다. 책 제목의 ‘동의(東醫)’란 중국 남쪽과 북쪽의 의학 전통에 비견되는 동쪽의 의학 전통, 즉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한다. ‘보감(寶鑑)’이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뜻으로 귀감이란 뜻을 지닌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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