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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조선이 헌상한 말을 미리 에도에 보내고 시나가와에 도착하여 통신사 일행은 의관을 갖추고 이동함

一. 동 6일, 시나가와(品川)에 도착했다. 신사 숙소는 절이었다.
〃 위의 향응은 시치고산에 금은 장식된 것이다.
〃 접대 담당은 소마 도라노스케(相馬虎助)님·오다 사몬님, 이나 헤이조님·모리야 사다유님이었다.
〃 오늘 조선국이 헌상한 말을 미리 에도로 보내셨다. 이 또한 안도 우쿄노조님·와키자카 아와지노카미·오코치 긴베에님 판단으로 혼세이지 안에 마구간을 만들어 여기에 두셨다. 먹이 등은 이 또한 접대 장소에서 준비하게 했다.
〃 오늘 후루카와 우마노스케가 이곳까지 마중 나왔다. 또한 먼저 에도로 이동했다.
〃 이곳부터 삼사와 일행의 조선인들이 각각 의관을 갖추고 이동했다. 행렬은 먼저 독(纛),주 670
각주 670)
독기(纛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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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형명기(形名旗),주 670
각주 670)
조선 왕권의 상징인 용(龍)이 그려져 있는 깃발. 형명기독(形名旗纛)이라고도 한다. 형명(形名)의 형(形)은 깃발을, 명(名)은 징이나 북을 뜻한다. 사행 때 북을 울리면서 기폭(旗幅)을 이용하여 사행단의 여러 가지 행동을 호령하며 신호를 보냈다. 형명기를 받들고 가는 사람을 형명기수(形名旗手)라고 하며, 통신사행 때 대개 정사와 부사가 각각 1명씩 거느렸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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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음에 독, 또 다음에 형명기, 그다음에 도훈도(都訓導)주 670
각주 670)
훈도(訓導)의 우두머리. 통신사행 때 삼사신이 각각 1~2명씩 총 3~6명을 거느렸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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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다음에 헌상마(獻上馬), 다음에 국서(國書), 다음에 판사(判事), 좌우에 자바라(錚點)주 670
각주 670)
얇은 놋쇠로 된 두개의 원반을 맞부딪쳐 소리 내는 타악기. 자바라(啫哱囉). 절에서 쓰는 크고 무거운 바라로부터 향악무(鄕樂舞)를 출 때 손가락에 붙들어 매고 쓰는 매우 작은 향발(響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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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 동고(銅𩉨)주 670
각주 670)
‘징’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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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 마상고(馬上𩉨) 3쌍이 늘어섰다. 그다음에 정사 좌우에 도끼(鉞)주 670
각주 670)
의장(儀仗)으로 쓰이는 도구. 의장에 쓰이는 ‘은월부(銀鉞斧)’는 은칠 한 나무 도끼에 붉은 창대를 꿴 것이다.(네이버 한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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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자루, 정(節)주 670
각주 670)
깃발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지방에 관찰사, 유수(留守), 병사(兵使), 수사(水使), 대장(大將), 통제사 등이 부임할 때 임금이 내어 주던 것에 절(節)과 부월(斧銊)이 있었다. 절은 수기(手旗)와 같고, 부월은 도끼 같이 만든 것으로, 군령을 어긴 자에 대한 생살권(生殺權)을 상징했다.(네이버 한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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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 걷는 사령(使令) 2명, 소동(小童)주 670
각주 670)
나이가 어린 10대 아동. 배소동(陪小童)이나 소동자(小童子)라고도 한다. 통신사행 때 대체로 삼사신(三使臣)이 각각 4명씩 거느렸고, 당상관이 2명씩 거느렸으며, 제술관이 1명을 거느렸다. 사행 중 정사, 부사, 종사관, 제술관, 역관 등의 시중을 들며, 때로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러 사신 일행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소동은 상관(上官)과 마찬가지로 상마(上馬)를 타며 수종(隨從)하는 왜인들이 10명도 넘는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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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 흡창(吸唱)주 670
각주 670)
사행 중 잔심부름을 하는 사내종. 급창(及唱)·흡창노(吸唱奴)·흡갈(吸喝)이라고도 한다. 통신사행 때에는 대체로 정사·부사·종사관이 각각 2명씩 총 6명의 급창을 거느리고 갔고, 문위행 때에는 2명을 데리고 갔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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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 다음으로 부사 좌우에 사령 2명, 소동 2명, 흡창 2명, 다음으로 종사 좌우에 사령 2명, 소동 2명, 흡창 2명, 다음으로 동지(同知),주 670
각주 670)
조선의 역관(譯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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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지(僉知),주 670
각주 670)
조선의 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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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學士), 상판사(上判事)주 670
각주 670)
조선의 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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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 판사(判事) 7명, 그 좌우에 청도기(淸道旗)주 670
각주 670)
사행 때 앞서 가면서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깃발. 원래는 행군할 때 사용하는 군기(軍旗)의 일종이다. 남빛 바탕에 가장자리와 화염(火焰)은 붉은빛이며, ‘淸道’라고 쓰여 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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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쌍, 언월도(偃月刀)주 670
각주 670)
대 도(大刀)의 일종으로 관도(關刀)라고도 한다. 초승달처럼 생겼고 칼등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으며 칼끝에 기다란 자루가 달려 있다. 중국 삼국시대의 명장 관우(關羽)가 이 무기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는데, 무거운 무게로 인해 실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으며 주로 군사훈련 시에 사용했다. 통신사행 때 대개 정사와 부사가 각각 2명씩 총 4명을 거느리고 갔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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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 삼지창(三支槍) 3쌍, 순시기(巡視 旗)주 670
각주 670)
사행 중 순찰하여 범법자를 잡아올 때 쓰는 깃발. 영기(令旗)와 같은 모양으로 ‘巡視’라고 붉게 쓰여 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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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 취라(吹螺)주 670
각주 670)
나팔의 일종. 통신사행 때 행렬을 따르면서 나각(螺角)을 부는 사람을 취라치(吹螺赤) 혹은 나각수(螺角手)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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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 태평소 3쌍, 나팔 3쌍, 긴 창(長槍) 3쌍, 비장(裨將) 5쌍, 영기(令旗)주 670
각주 670)
사신이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하는 깃발. 원래는 군중(軍中)에서 사용했다. 전령(傳令)이 들고 가며, 푸른 비단에 붉은 글씨로 ‘令’자가 쓰여 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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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 포수(炮手)주 670
각주 670)
사행 때 화포(火砲) 쏘는 일을 맡은 사람. 화포수(火砲手). 통신사행 때 대개 삼사신(三使臣)이 각각 2명씩 총 6명을, 문위행(問慰行) 때에는 대개 2명을 데리고 갔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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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쌍, 다음으로 안롱(鞍籠)주 670
각주 670)
안롱은 수레나 가마 따위를 덮는 우비의 하나로, 두꺼운 유지(油紙)나 가죽 따위로 만들며 흔히 한쪽에 사자를 그려 넣는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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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열(輩), 승상(乘床)주 670
각주 670)
가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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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열(輩), 말탄 사령 3쌍, 소동 3쌍 등이 좌우에 섰다. 시바구치(柴口)주 670
각주 670)
‘ 芝口’라고도 함. 에도성 남쪽에 있는 에도로 들어오는 입구. 후에 1710년 통신사의 파견에 맞춰 시바구치고몬(芝口御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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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숙사(宿寺)까지는 위의 행렬로 이동했다. 길의 교차로마다 경호가 있었고, 길에 골목이 있는 곳은 여러 명이 창을 들고 막아서 경호했다.

  • 각주 670)
    독기(纛旗). 바로가기
  • 각주 670)
    조선 왕권의 상징인 용(龍)이 그려져 있는 깃발. 형명기독(形名旗纛)이라고도 한다. 형명(形名)의 형(形)은 깃발을, 명(名)은 징이나 북을 뜻한다. 사행 때 북을 울리면서 기폭(旗幅)을 이용하여 사행단의 여러 가지 행동을 호령하며 신호를 보냈다. 형명기를 받들고 가는 사람을 형명기수(形名旗手)라고 하며, 통신사행 때 대개 정사와 부사가 각각 1명씩 거느렸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670)
    훈도(訓導)의 우두머리. 통신사행 때 삼사신이 각각 1~2명씩 총 3~6명을 거느렸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670)
    얇은 놋쇠로 된 두개의 원반을 맞부딪쳐 소리 내는 타악기. 자바라(啫哱囉). 절에서 쓰는 크고 무거운 바라로부터 향악무(鄕樂舞)를 출 때 손가락에 붙들어 매고 쓰는 매우 작은 향발(響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670)
    ‘징’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670)
    의장(儀仗)으로 쓰이는 도구. 의장에 쓰이는 ‘은월부(銀鉞斧)’는 은칠 한 나무 도끼에 붉은 창대를 꿴 것이다.(네이버 한자사전) 바로가기
  • 각주 670)
    깃발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지방에 관찰사, 유수(留守), 병사(兵使), 수사(水使), 대장(大將), 통제사 등이 부임할 때 임금이 내어 주던 것에 절(節)과 부월(斧銊)이 있었다. 절은 수기(手旗)와 같고, 부월은 도끼 같이 만든 것으로, 군령을 어긴 자에 대한 생살권(生殺權)을 상징했다.(네이버 한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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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어린 10대 아동. 배소동(陪小童)이나 소동자(小童子)라고도 한다. 통신사행 때 대체로 삼사신(三使臣)이 각각 4명씩 거느렸고, 당상관이 2명씩 거느렸으며, 제술관이 1명을 거느렸다. 사행 중 정사, 부사, 종사관, 제술관, 역관 등의 시중을 들며, 때로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러 사신 일행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소동은 상관(上官)과 마찬가지로 상마(上馬)를 타며 수종(隨從)하는 왜인들이 10명도 넘는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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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행 중 잔심부름을 하는 사내종. 급창(及唱)·흡창노(吸唱奴)·흡갈(吸喝)이라고도 한다. 통신사행 때에는 대체로 정사·부사·종사관이 각각 2명씩 총 6명의 급창을 거느리고 갔고, 문위행 때에는 2명을 데리고 갔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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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역관(譯官).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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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행 때 앞서 가면서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깃발. 원래는 행군할 때 사용하는 군기(軍旗)의 일종이다. 남빛 바탕에 가장자리와 화염(火焰)은 붉은빛이며, ‘淸道’라고 쓰여 있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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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도(大刀)의 일종으로 관도(關刀)라고도 한다. 초승달처럼 생겼고 칼등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으며 칼끝에 기다란 자루가 달려 있다. 중국 삼국시대의 명장 관우(關羽)가 이 무기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는데, 무거운 무게로 인해 실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으며 주로 군사훈련 시에 사용했다. 통신사행 때 대개 정사와 부사가 각각 2명씩 총 4명을 거느리고 갔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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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670)
    사신이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하는 깃발. 원래는 군중(軍中)에서 사용했다. 전령(傳令)이 들고 가며, 푸른 비단에 붉은 글씨로 ‘令’자가 쓰여 있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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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행 때 화포(火砲) 쏘는 일을 맡은 사람. 화포수(火砲手). 통신사행 때 대개 삼사신(三使臣)이 각각 2명씩 총 6명을, 문위행(問慰行) 때에는 대개 2명을 데리고 갔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670)
    안롱은 수레나 가마 따위를 덮는 우비의 하나로, 두꺼운 유지(油紙)나 가죽 따위로 만들며 흔히 한쪽에 사자를 그려 넣는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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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마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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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芝口’라고도 함. 에도성 남쪽에 있는 에도로 들어오는 입구. 후에 1710년 통신사의 파견에 맞춰 시바구치고몬(芝口御門)이 세워졌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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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헌상한 말을 미리 에도에 보내고 시나가와에 도착하여 통신사 일행은 의관을 갖추고 이동함 자료번호 : kn.k_0007_0050_0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