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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통신사가 등성하여 진행한 예식 절차와 쇼군의 접견 및ㄹ 헌상품 목록

一. 동 13일, 사각(巳刻)에 신사가 등성했다. 고운인님은 두 초로와 함께 먼저 등성하셨다.
〃 신사의 깃발, 취악기, 그 외 도구들은 오테고몬(大手御門)주 750
각주 750)
에도성의 정문. 〈참고 자료 3〉 「江戸城寛永度繪圖」 오른쪽 하단 부분에 오테고몬(大手御門)을 지나 들어간 곳에 아카가네고몬(銅御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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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하마소(下馬所)주 750
각주 750)
다이묘나 하타모토가 에도성 혼마루(本丸)에 등성할 때는 오테몬과 우치사쿠라다몬(内桜田門)을, 니시노마루(西の丸)에 등성할 때는 니시노마루오테몬(西の丸大手門)을 이용했다. 이들 문 앞에는 ‘게바(下馬)’라는 표찰이 있어, 문자 그대로 여기에서 말에서 내리는 것을 의미했다. 다이묘나 역고(役高) 500석 이상의 관리, 고케(高家) 등 ‘조요(乗輿) 이상의 격(格)’ 이외의 사람들은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만 했다. 말에서 내려 문 안쪽으로 들어갈 때 동행하는 인원수도 신분 별로 제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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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남겨 두었다.
〃 말에 탄 조선인도 모두 이곳에서 내렸다.
〃 상상관·판사관·학사는 오테고몬 안쪽, 다리 근처에서 가마를 내렸다.
〃 삼사는 아카가네고몬(銅御門)주 750
각주 750)
에도성 니노마루(二丸)의 출입문. 『德川實記』에서는 중문(中門)이라고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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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 세 번째 대기소(腰掛)주 750
각주 750)
성이나 다이묘 저택에서 동행한 수행원이나 종자들이 대기하며 기다리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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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서 가마를 내렸고, 의장용 양산(蓋)주 750
각주 750)
의 장(儀仗)의 하나로 양산(洋傘) 모양. 비단 천으로 꾸며져 빛깔에 따라 청개(靑蓋)·홍개(紅蓋)·황개(黃蓋)·흑개(黑蓋) 따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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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남겨 두었다.
〃 삼사가 가마에서 내리고, 고운인님·안도 우쿄노조님·와키자카 아와지노카미님·쇼초로·린세이도가 마중 나갔다. 이노우에 지쿠고노카미님과 아키야마 슈리노스케님이 현관까지 마중 나오셨다. 그리고 함께 삼사를 덴조노마(天井之間)주 750
각주 750)
에도성 혼마루고텐(本丸御殿, 쇼군의 거처) 현관 옆의 대기실. 『德川實記』에서는 ‘殿上間’이라고 표현. 조선통신사의 의례가 행해지는 에도성 안의 구조와 공간 명칭에 관해서는 〈참고 자료 1〉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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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인도했다.
〃 삼사가 덴조노마 중단에 앉고, 나머지 조선인은 차례로 쓰기노마에 앉았다.
〃 이날 덴조노마 상단은 열쇠로 풀고 개방해 우쿄노조님·아와지노카미님·지쿠고노카미님·슈리노스케님·두 초로가 이곳에 앉았다.
〃 이때 신사 배례의 절차, 고산케(御三家)주 750
각주 750)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9남 요시나오, 10남 요리노부, 11남 요리후사 등을 시조로 하여, 각각 오와리(尾張) 나고야번, 기이(紀伊) 와카야마번, 히타치 미토(水戸)번을 다스리는 집안 혹은 그 당주(當主). 세 가문 모두 쇼군의 일족이라는 권위를 가진 다이묘로, 쇼군에게 계승자가 없는 경우 쇼군 가문을 상속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8대 요시무네(吉宗)와 14대 이에모치(家茂)는 모두 기이 가문 출신으로 종가(宗家)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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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과 삼사의 대면에 관해 로주님들이 말하셨다.
〃 조선 국왕이 보낸 별폭(別幅)주 750
각주 750)
교린문서(交隣文書)의 일종으로써 예물의 종류와 수량을 적은 물품 목록. 일반적인 의미의 별폭은 ‘별도의 문서’를 의미하지만, 역사적 용어로서 한정된 의미로 사용하는 별폭은 조선과 일본, 혹은 조선과 류큐왕국처럼 교린관계를 맺고 있던 국가들 사이에 교환된 예물 목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조선 국왕이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예물은 별폭이라 하지 않고 ‘방물표(方物表)’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조일 양국은 서계의 교환과 함께 반드시 별폭을 주고받음으로써 상호 정치적·경제적 교류의 증진을 도모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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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물품은 고운인님의 지시로 히로마주 750
각주 750)
에도성 안에서 가장 큰 서원(書院). 〈참고 자료 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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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져다 두셨다.
〃 다이유인(大猷院)주 750
각주 750)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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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히로마로 나오셔서 삼사를 부르라고 하시자, 고운인님이 덴조노마로 가셔서 삼사를 히로마의 대기실(廣間之次) 여러 다이묘님이 늘어앉은 가운데쯤 히로마의 후스마(襖)주 750
각주 750)
방의 구역 구분을 위해 설치한 장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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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2겐(間)주 750
각주 750)
다다미의 크기,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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쯤 떨어진 곳까지 인도하셨다. 삼사가 히로마를 향해 조금 비스듬하고 단정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단, 삼사가 히로마로 가실 때에 초피관(貂皮冠)주 750
각주 750)
조선시대 주로 남성들이 착용하던 방한모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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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벗고 현사관(玄糸冠)을 쓰셨다.
〃 이때 상상관과 판사는 툇마루에 단정하게 있었다. 상상관 홍동지가 조선 국왕의 서한 상자를 받들어 삼사 앞에 놓고 물러났다. 그때 가몬노카미님·시모우사노카미님·오이노카미님·사누키노카미님이 툇마루로 오셔서 고운인님에게 삼사를 나오게 하라고 말했다. 그때 고운인님이 서한 상자를 받아서 삼사 앞 쇼군의 시야가 닿는 툇마루에 계셨다. 기라 고즈케노카미(吉良上野守)주 750
각주 750)
기라 요시미쓰(吉良義彌). 1608년 막부의 의식전례(儀式典禮)를 맡는 고케(高家)가 되었다.(『日本人名大辭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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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상단 쇼군의 좌석 오른쪽의 툇마루에서 하단의 중간으로 나오셔서 조금 비스듬하게 앉으시자, 고운인님이 위의 서한 상자를 하단으로 가져 오셨다. 두 분이 무릎으로 기어서 쇼군 앞 자리에 건네신 뒤 고운인님은 원래대로 툇마루로 물러나셨다. 고즈케노카미님이 서한 상자를 가지고 고운인님 왼쪽에 두시고, 원래대로 툇마루로 물러나셨다.
단, 이때 가몬노카미님·시모우사노카미님·오이노카미님·사누키노카미님은 삼사가 쇼군 앞에 나가 배례를 마칠 때까지는 중단과 하단 사이, 쇼군의 시야에서 오른쪽에 앉아 계셨다.
〃 그 후 삼사가 중단 두 번째 다다미까지 왔을 때 고운인님이 거기 멈춰 세우자 삼사 일동이 4번 반 배례했고, 마친 뒤 하단의 쇼군의 시야에서 왼쪽 장지문 쪽에 대기하셨다.
단, 이때 가몬노카미님·시모우사노카미님·오이노카미님·사누키노카미님은 함께 툇마루로 물러나셨다. 고운인님도 원래 장소로 물러나셨다.
〃 그 후 다이유인님께서 가몬노카미님·시모우사노카미님·오이노카미님·사누키노카미님을 불러서 말하시길, “이번에 조선국이 성신(誠信)을 중시하여 신사를 파견하니 대단히 기쁘다. 또한 삼사가 먼 길을 오느라 고생스러웠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위 네 분이 쇼군의 말씀을 듣고 하단 가운데로 가서 고운인님께 전달했고, 고운인님이 상상관 홍동지를 하단으로 불러 쇼군의 말씀을 전달했다. 상상관이 그 뜻을 삼사에게 전하자, 삼사가 삼가 쇼군의 뜻을 들으시고 “감사합니다. 답례 인사는 네 분께서 잘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네 분이 이를 아뢰고 물러났는데, 다시 네 분을 부르셔서 쇼군이 말하시길, “지난 번 조선국에서 보낸 서한을 중간에서 거짓으로 고친 것이 드러나 내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위서(僞書)라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으니 그렇게 아시오”라고 하셨다. 이 내용을 네 분이 고운인님께 전달하자, 고운인님이 다시 홍동지를 불러서 전해들은 쇼군의 뜻을 삼사에게 전달했다. 삼사가 들으시고 “쇼군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신경을 써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답례한 것을 네 분이 쇼군께 아뢰었고, 마친 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 삼사가 다시 하단으로 나와서 2번 반 배례하고, 원래대로 히로마의 쓰기노마로 물러가 앉았다. 그 후 조선국이 헌상한 안장 걸친 말 2필을 뜰에서 쇼군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끌고 왔다. 나머지 헌상물은 쇼군의 좌석 오른쪽의 툇마루에 두었다.
헌상품
대권(大卷)주 750
각주 750)
비단 두루마리. 대권단(大卷緞)은 대단(大緞)·한단(漢緞)이라고도 하며, 중국에서 나는 비단을 가리킨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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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필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는 세로 6척, 가로 2척.
황조포(黃照布)주 750
각주 750)
황색 모시. 삼의 겉껍질을 긁어내고 만든 속실로 짠 모시의 한 가지. 모시는 모시풀의 인피섬유(靭皮纖維)로 짠 직물. 우리나라의 모시는 올이 가늘면서도 질겨, 다른 나라의 저포(苧布)에 비해서 품질이 좋기로 알려져 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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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필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는 세로 1장, 가로 2척
유포(油布)주 750
각주 750)
기름보. 방수포의 한 종류로써 천에 특정 기름을 도포하여 햇빛에 기름을 건조시켜 방수막을 형성시킨 천. 대일무역의 수출 품목 중 하나. 일본에서는 주로 비옷으로 사용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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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필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와 가로는 위와 같음
백조포(白照布)주 750
각주 750)
누여서 희게 만든 품질이 좋은 모시풀로 만든 천. 삼실 따위를 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만든 천으로, 일본에서는 특히 찻잔을 닦는 데에 유용하게 썼다. 백조포(白照布)는 조선이 통신사절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는 대표적인 품목 중 하나였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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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필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가로는 위와 같음
흑마포(黑麻布)주 750
각주 750)
검은 빛깔의 삼베. 마포(麻布)는 마로 만든 직물로, 모시와 삼베를 구분하여 보통 삼베로 만든 것을 마포라고 했다. 지역에서 재배되는 삼, 아마, 모시풀 등의 초피(草皮) 섬유로 만드는데, 국가 간 중요한 진헌물(進獻物)이나 교역 물품으로 사용되었다. 흑마포(黑麻布)는 1607년의 첫 번째 통신사행을 통해 일본에 보내기 시작한 물품이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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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필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가로는 위와 같음
호피(虎皮)    15매  받침대 3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1장 2척, 가로 4척
표피(豹皮)    20매  받침대 2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2간, 가로 2척 5촌
수자(繻子)주 750
각주 750)
두텁고 매끈하며 윤이 나는 비단의 한 종류. 수자(繻子)는 직물을 조직하는 데 있어 경사(經絲)나 위사(緯絲)가 직물 표면에 많이 나타나게 하여 평직이나 능직에 비해 매우 반드럽고 광택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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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필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5척, 가로 2척
인삼(人參)    15근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8척, 가로 4척 5촌
채화석(彩花席)주 750
각주 750)
물들인 왕골을 덧겹쳐 가며 엮은 후에 무늬를 따라 잘라낸 꽃돗자리.(『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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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병  받침대 2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2간, 가로 2척 5촌
황모필(黃毛筆)  50병
유매묵(油煤墨)  50홀
청피(靑皮)주 750
각주 750)
일본이 조선으로부터 수입한 소가죽의 일종. 표면이 청색을 띠는 소가죽을 가공한 것으로, 무로마치시대 말부터 에도시대에 걸쳐 무구(武具)의 가죽 부분이나 궤의 덮개 등의 세공물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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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매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8척, 가로 2척 5촌.
황밀(黃蜜)주 750
각주 750)
꿀을 채취한 뒤에 남은 꿀벌집을 끓여서 만든 것. 벌집에서 꿀을 짜낸 뒤에 벌집 찌꺼기와 물을 조금 섞은 뒤 끓여 짜낸 것이다. 초를 만들거나 약재로 쓰이기도 하고, 점성(粘性)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노란빛이 나므로 황밀이라 하며 숙밀(熟蜜), 황랍(黃蠟), 밀랍(蜜蠟)이라고도 한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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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근  받침대 2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3척 5촌, 가로 2척.
교피(鮫皮)주 750
각주 750)
말린 상어의 가죽으로 사어피(沙魚皮)라고도 한다. 칼자루가 손에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칼자루에 감거나 말안장, 말고삐 등을 장식하는 데 주로 쓰였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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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장  받침대 5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2간, 가로 3척.
청밀(淸蜜)주 750
각주 750)
벌이 꽃의 꿀샘에서 채집하여 저장해 둔 것. 꿀, 봉밀(蜂蜜), 석청밀(石淸蜜)이라고도 한다. 1607년 통신사행부터 일본 쇼군에게 보내는 공예단(公禮單) 물품에 포함되었다. 한 항아리에 담는 양은 한 말[斗]로 정했다. 청밀은 공예단 외에 하정물목(下程物目)이나 삼사신(三使臣) 사예단(私禮單)으로 주고받기도 했다.(『대일외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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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근  10근을 넣은 항아리 10개를 한 상자로 해서.
색지(色紙)    30권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 세로 2간, 가로 2척 5촌.
매(鷹)      20연  새장 20개.
말(馬)      2필   안장과 마구들과 같이.
이상
마친 뒤 삼사가 자신들의 헌상물을 쇼군의 시야가 닿는 툇마루에 늘어놓자, 사카이 구나이노쇼님이 하단으로 와서 쇼군께 보여 드리고 엔가와로 물러났다. 그때 삼사가 하단으로 나와서 배례하겠다고 하자, 쇼군이 한 단 더 올라오라고 하셔서 방금 전처럼 중단에서 4번 반 배례하고, 마친 뒤 원래대로 하단의 후스마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단, 이번 배례 시에도 위 네 분이 방금과 같이 중단 문지방에서 대기하셨다. 고운인님도 지시에 따라 삼사와 함께 앉으셨다.
호피       6매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의 세로 2간, 가로 4척.
조포       10필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의 세로 6척, 가로 2척.
인삼       10근  받침대 1개에 쌓음. 받침대의 세로 4척, 가로 1척 8촌.
이상
위는 삼사 자신들의 헌상물이다.
〃 그 후 가와라케(土器)주 750
각주 750)
겉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도기(陶器), 질그릇. 여기에서는 유약 바르지 않고 구운 도기 술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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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조시(銚子)주 750
각주 750)
술을 넣어서 잔에 따르기 위한 도구. 긴 손잡이가 달린 주기(酒器)의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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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왔다. 이이 유키에(井伊靱負)주 750
각주 750)
이이 나오시게(井伊直滋). 히코네번(彦根藩) 2대 번주 이이 나오타카(井伊直孝)의 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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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가와라케를 가져 와서 쇼군께 드렸다. 오자와 지주(大澤侍從)주 750
각주 750)
오자와 모토시게(大澤基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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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조시를, 기라 지주(吉良侍從)주 750
각주 750)
기라 요시미쓰, 혹은 그의 아들 기라 요시후유(吉良義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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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구와에(御加)주 750
각주 750)
술을 잔이나 술병에 더하는 것. 또는 그러기 위해 사용하는 주기(酒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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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가지고 오셨다. 삼사가 차례로 중단으로 불려가서 [쇼군이] 가와라케를 내려 주시자 배례를 1번 하고 가와라케를 받았고, 바로 가와라케를 들고 원래 자리로 물러나 계셨다.
단, 고운인님은 이때도 방금처럼 삼사와 같이 앉아 계셨다.
위 삼사가 가와라케를 받는 의식이 끝난 뒤, 상상관 두 명이 하단으로 나와 두 번째 다다미에서 4번 반 배례했다. 상관은 툇마루, 차관은 오치엔, 중관은 뜰에서 각각 4번 반 배례를 했다.
단, 상관이 배례할 때는 궁시(弓矢)를 치웠다.
위의 배례가 끝나고 신사가 다시 하단 두 번째 다다미에서 4번 반 배례하고 원래대로 히로마의 쓰기노마로 물러났다. 그 후 [쇼군이] 앞의 네 분을 불러서 삼사에게 말하시길, “오늘 향응이 있을 것이니 천천히 들도록 하시오”라고 하셨다. 네 분이 툇마루로 나오셔서 쇼군의 뜻을 고운님께 말하시고, 고운인님이 홍동지를 불러 쇼군의 뜻을 전달한 것을 삼사에게 말하자, [삼사가] 삼가 듣고 답례를 드렸다. 마치고 다이유인님이 안으로 들어가시자 상단의 발(簾)이 내려왔다. 그 후 다이나곤 요시나오(大納言義直)주 750
각주 750)
오와리번(尾張藩) 번주 도쿠가와 요시나오(德川義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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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 주나곤 요리후사(中納言賴房)주 750
각주 750)
미토번(水戶藩) 번주 도쿠가와 요리후사(德川賴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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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히로마 하단으로 와서 동쪽을 향해 섰다. 삼사가 모두 나와서 서쪽을 향해 서고, 서로 2번 반 대례를 하고 앉았다. 다이나곤님은 정사와 마주 앉아 다다미 반 장 정도 위에 계셨으며, 주나곤님은 부사, 종사와 마주 앉아 두 명 사이의 건너편에 계셨다.
〃 향응은 시치고산이었다. 상과 술잔 받침대는 금으로 된 것이었다.
〃 가와라케의 각 잔은, 첫 번째 잔은 다이나곤님, 두 번째 잔은 정사, 세 번째 잔을 따르는 것은 주나곤님이 시작하셨다.
〃 과자는 금 받침대 산보(三方)주 750
각주 750)
각진 쟁반에 앞과 좌우 세 모퉁이에 구멍을 뚫은 대를 붙인 것. 대개 노송나무의 흰 목재로 만든다.(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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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담겨 나왔다.
〃 연향 중에 가몬노카미님·시모우사노카미님·오이노카미님·사누키노카미님·이즈노카미님·분고노카미님은 툇마루에 열을 지어 계셨다. 고운인님도 같은 자리에 계셨다.
〃 이날 다이나곤님과 주나곤님은 예복을 갖추었고, 오이노카미님과 사누키노카미님은 예복을 갖추고 다치(太刀)주 750
각주 750)
날을 밑으로 향하여 허리에 차는 길고 큰 칼.(『日本國語大辭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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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차셨다. 이즈노카미님·분고노카미님·가가노카미님·고운인님은 모두 의관을 갖추고 평소의 다치를 차셨다. 여러 다이묘님은 의관을 갖추고 다치는 차지 않았다.
〃 상상관 2명은 히로마의 대기실에서 향응이 이루어졌다. 자부교(座奉行)주 750
각주 750)
축하하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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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두 초로는 이곳에 계셨다. 나머지 조선인은 덴조노마 안쪽 넓은 방에서 향응을 받았다.
〃 연향이 끝나고 삼사 모두가 다이나곤님과 주나곤님에게 서로 2번 반 배례하고 물러났다.
〃 삼사가 물러날 때 오이노카미님·사누키노카미님·이즈노카미님·분고노카미님은 히로마에서 덴조노마로 가셨다. 툇마루까지 배웅 나가서 서로 가볍게 인사한 뒤 현관까지는 아까처럼 지쿠고노카미님과 슈리노스케님이 배웅 나갔다. 가마 타는 곳까지는 이 또한 아까처럼 우쿄노조님·아와지노카미님·두 초로가 배웅 나갔다.
〃 아와지노카미님과 두 초로는 삼사가 돌아간 뒤 [에도성에서] 물러났다.
〃 고운인님과 우쿄노조님은 다시 성으로 가서 신사가 답례한 내용을 이즈노카미님께 아뢰고 물러났다.
〃 오늘 밤, 신사가 물러간 뒤 큰 눈이 내렸다.

  • 각주 750)
    에도성의 정문. 〈참고 자료 3〉 「江戸城寛永度繪圖」 오른쪽 하단 부분에 오테고몬(大手御門)을 지나 들어간 곳에 아카가네고몬(銅御門)이 보인다. 바로가기
  • 각주 750)
    다이묘나 하타모토가 에도성 혼마루(本丸)에 등성할 때는 오테몬과 우치사쿠라다몬(内桜田門)을, 니시노마루(西の丸)에 등성할 때는 니시노마루오테몬(西の丸大手門)을 이용했다. 이들 문 앞에는 ‘게바(下馬)’라는 표찰이 있어, 문자 그대로 여기에서 말에서 내리는 것을 의미했다. 다이묘나 역고(役高) 500석 이상의 관리, 고케(高家) 등 ‘조요(乗輿) 이상의 격(格)’ 이외의 사람들은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만 했다. 말에서 내려 문 안쪽으로 들어갈 때 동행하는 인원수도 신분 별로 제한이 있었다. 바로가기
  • 각주 750)
    에도성 니노마루(二丸)의 출입문. 『德川實記』에서는 중문(中門)이라고 표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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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이나 다이묘 저택에서 동행한 수행원이나 종자들이 대기하며 기다리던 곳. 바로가기
  • 각주 750)
    의 장(儀仗)의 하나로 양산(洋傘) 모양. 비단 천으로 꾸며져 빛깔에 따라 청개(靑蓋)·홍개(紅蓋)·황개(黃蓋)·흑개(黑蓋) 따위가 있다. 바로가기
  • 각주 750)
    에도성 혼마루고텐(本丸御殿, 쇼군의 거처) 현관 옆의 대기실. 『德川實記』에서는 ‘殿上間’이라고 표현. 조선통신사의 의례가 행해지는 에도성 안의 구조와 공간 명칭에 관해서는 〈참고 자료 1〉을 참조. 바로가기
  • 각주 750)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9남 요시나오, 10남 요리노부, 11남 요리후사 등을 시조로 하여, 각각 오와리(尾張) 나고야번, 기이(紀伊) 와카야마번, 히타치 미토(水戸)번을 다스리는 집안 혹은 그 당주(當主). 세 가문 모두 쇼군의 일족이라는 권위를 가진 다이묘로, 쇼군에게 계승자가 없는 경우 쇼군 가문을 상속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8대 요시무네(吉宗)와 14대 이에모치(家茂)는 모두 기이 가문 출신으로 종가(宗家)를 계승했다. 바로가기
  • 각주 750)
    교린문서(交隣文書)의 일종으로써 예물의 종류와 수량을 적은 물품 목록. 일반적인 의미의 별폭은 ‘별도의 문서’를 의미하지만, 역사적 용어로서 한정된 의미로 사용하는 별폭은 조선과 일본, 혹은 조선과 류큐왕국처럼 교린관계를 맺고 있던 국가들 사이에 교환된 예물 목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조선 국왕이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예물은 별폭이라 하지 않고 ‘방물표(方物表)’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조일 양국은 서계의 교환과 함께 반드시 별폭을 주고받음으로써 상호 정치적·경제적 교류의 증진을 도모했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에도성 안에서 가장 큰 서원(書院). 〈참고 자료 1〉 참조. 바로가기
  • 각주 750)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바로가기
  • 각주 750)
    방의 구역 구분을 위해 설치한 장지문. 바로가기
  • 각주 750)
    다다미의 크기,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 바로가기
  • 각주 750)
    조선시대 주로 남성들이 착용하던 방한모의 일종. 바로가기
  • 각주 750)
    기라 요시미쓰(吉良義彌). 1608년 막부의 의식전례(儀式典禮)를 맡는 고케(高家)가 되었다.(『日本人名大辭典』) 바로가기
  • 각주 750)
    비단 두루마리. 대권단(大卷緞)은 대단(大緞)·한단(漢緞)이라고도 하며, 중국에서 나는 비단을 가리킨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황색 모시. 삼의 겉껍질을 긁어내고 만든 속실로 짠 모시의 한 가지. 모시는 모시풀의 인피섬유(靭皮纖維)로 짠 직물. 우리나라의 모시는 올이 가늘면서도 질겨, 다른 나라의 저포(苧布)에 비해서 품질이 좋기로 알려져 있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기름보. 방수포의 한 종류로써 천에 특정 기름을 도포하여 햇빛에 기름을 건조시켜 방수막을 형성시킨 천. 대일무역의 수출 품목 중 하나. 일본에서는 주로 비옷으로 사용했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누여서 희게 만든 품질이 좋은 모시풀로 만든 천. 삼실 따위를 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만든 천으로, 일본에서는 특히 찻잔을 닦는 데에 유용하게 썼다. 백조포(白照布)는 조선이 통신사절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는 대표적인 품목 중 하나였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검은 빛깔의 삼베. 마포(麻布)는 마로 만든 직물로, 모시와 삼베를 구분하여 보통 삼베로 만든 것을 마포라고 했다. 지역에서 재배되는 삼, 아마, 모시풀 등의 초피(草皮) 섬유로 만드는데, 국가 간 중요한 진헌물(進獻物)이나 교역 물품으로 사용되었다. 흑마포(黑麻布)는 1607년의 첫 번째 통신사행을 통해 일본에 보내기 시작한 물품이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두텁고 매끈하며 윤이 나는 비단의 한 종류. 수자(繻子)는 직물을 조직하는 데 있어 경사(經絲)나 위사(緯絲)가 직물 표면에 많이 나타나게 하여 평직이나 능직에 비해 매우 반드럽고 광택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물들인 왕골을 덧겹쳐 가며 엮은 후에 무늬를 따라 잘라낸 꽃돗자리.(『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일본이 조선으로부터 수입한 소가죽의 일종. 표면이 청색을 띠는 소가죽을 가공한 것으로, 무로마치시대 말부터 에도시대에 걸쳐 무구(武具)의 가죽 부분이나 궤의 덮개 등의 세공물에 사용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750)
    꿀을 채취한 뒤에 남은 꿀벌집을 끓여서 만든 것. 벌집에서 꿀을 짜낸 뒤에 벌집 찌꺼기와 물을 조금 섞은 뒤 끓여 짜낸 것이다. 초를 만들거나 약재로 쓰이기도 하고, 점성(粘性)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노란빛이 나므로 황밀이라 하며 숙밀(熟蜜), 황랍(黃蠟), 밀랍(蜜蠟)이라고도 한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말린 상어의 가죽으로 사어피(沙魚皮)라고도 한다. 칼자루가 손에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칼자루에 감거나 말안장, 말고삐 등을 장식하는 데 주로 쓰였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벌이 꽃의 꿀샘에서 채집하여 저장해 둔 것. 꿀, 봉밀(蜂蜜), 석청밀(石淸蜜)이라고도 한다. 1607년 통신사행부터 일본 쇼군에게 보내는 공예단(公禮單) 물품에 포함되었다. 한 항아리에 담는 양은 한 말[斗]로 정했다. 청밀은 공예단 외에 하정물목(下程物目)이나 삼사신(三使臣) 사예단(私禮單)으로 주고받기도 했다.(『대일외교사전』) 바로가기
  • 각주 750)
    겉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도기(陶器), 질그릇. 여기에서는 유약 바르지 않고 구운 도기 술잔. 바로가기
  • 각주 750)
    술을 넣어서 잔에 따르기 위한 도구. 긴 손잡이가 달린 주기(酒器)의 일종. 바로가기
  • 각주 750)
    이이 나오시게(井伊直滋). 히코네번(彦根藩) 2대 번주 이이 나오타카(井伊直孝)의 장남. 바로가기
  • 각주 750)
    오자와 모토시게(大澤基重). 바로가기
  • 각주 750)
    기라 요시미쓰, 혹은 그의 아들 기라 요시후유(吉良義冬). 바로가기
  • 각주 750)
    술을 잔이나 술병에 더하는 것. 또는 그러기 위해 사용하는 주기(酒器). 바로가기
  • 각주 750)
    오와리번(尾張藩) 번주 도쿠가와 요시나오(德川義直). 바로가기
  • 각주 750)
    미토번(水戶藩) 번주 도쿠가와 요리후사(德川賴房). 바로가기
  • 각주 750)
    각진 쟁반에 앞과 좌우 세 모퉁이에 구멍을 뚫은 대를 붙인 것. 대개 노송나무의 흰 목재로 만든다.(근세 한일관계 사료집 Ⅲ) 바로가기
  • 각주 750)
    날을 밑으로 향하여 허리에 차는 길고 큰 칼.(『日本國語大辭典』) 바로가기
  • 각주 750)
    축하하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책임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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