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僞書)의 필자와 인장에 대한 검사의 신문 내용과 조선 도해선을 중지하는 검사의 명령
〃 동 23일, 조시(上使)가 즈쇼·가게유·시키부·겐모쓰 모두 나오라고 하셔서 이를 겐에몬에게 전달하고 세이잔지로 갔다. 검사가 말하기를, “겐나(元和) 정사년(1617) 신사 내빙 때주 050는 보초로가 일을 관장하지 않았다고 시치에몬이 말했다. 겐나 신유년(1621)에 고쇼마루(御所丸) 송사주 050로 [조선에] 건너간 사람들, 소 사누키노카미(宗讚岐守)주 050·오하라 누이노스케(大原縫殿助)·오하라 가쓰스케(勝助)·와타나베 요시치자에몬(渡部與七左衛門)을 부르시오”라고 했다. 그런데 누이노스케 부자는 에도에 있어서 사누키노카미·요시치자에몬에게 그 내용을 전했다. 또한 시마카와 다쿠미(嶋川內匠)주 050도 위의 인원에 포함되지만 부젠노카미 영지 내의 사람이라서 시치에몬에게 전하게 했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그러자 이쪽에서 부를 사람을 보내라고 특별히 지시하셨기 때문에, 다키 한에몬(瀧判右衛門)·오이시 다키노스케(大石瀧之助)가 이 건의 사자로 지명되었다. 검사가 위 두 사람에게 “도중에 엄하게 경호해서 부젠노카미와 일심동체인 자들이 비밀 대화를 나눌 수 없게 하라”고 말했다.
〃 검사가 또 말하기를,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시치에몬을 불러서 이것저것 조사했지만 위서의 필자와 인장을 새긴 자를 모른다고 말해서, 모른다는 취지로 증문(證文)을 작성하게 했다. 지금은 이렇게 말했지만, 에도에 가서는 실토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고 했다. 이에 우리들이 “그가 지금 모른다는 내용의 증문을 쓴 이상, 에도에 가서 다시 이름을 지명해서 말하더라도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에 이 일을 처음 심문하셨을 때는 그 필자와 인장 새긴 자가 17인 가운데 있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 전혀 모른다고 하면 이번에 데려가는 17인은 무엇 때문에 가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검사가 답하기를 “과연 지당한 의견이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시치에몬의 진술에 17인이 막부에 가서 대질할 거라서 데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어쨌거나 이 일은 우리에게 생각이 있으니 우리에게 맡기시오”라고 했다. 우리가 또 말하기를, “위 17인은 바로 지금 모조리 데려갈 것입니다. 아리타 모쿠베에와 시모다 겐에몬(下田源右衛門)은 조선에 가 있어서주 050
각주 050)

생사를 알기 어렵습니다. 만일 귀국하지 않은 동안 예기치 않게 병사라도 할 때 시치에몬이 그들에게 거짓을 뒤집어씌우더라도 절대 들어주셔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니, 검사가 대답하여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쪽도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안심하시오”라고 말했다.쓰시마번은 조선의 마상재인(馬上才人)을 데려오기 위해 아리타 모쿠베에를 조선에 급파했다. 1634년 9월 에도를 출발한 아리타는 11월에 쓰시마를 거쳐 12월 말에 부산 왜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야냐가와잇켄으로 인해 에도에서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어 사건에 연루된 쓰시마의 관계자들이 에도로 소환되기 시작하자, 소환자 명단에 들어있던 아리타는 조선과 교섭을 하던 도중 서둘러 쓰시마로 돌아가 1635년 정월 쓰시마에서 에도로 향했다.(宗家記錄, 「裁判有田杢兵衛覺書」, 『分類紀事大綱』 34, 일본국회도서관 소장. 『邊例集要』 권1, 별차왜, 甲戌(1634) 12월조)
〃 같은 날, 이나(伊奈)·도요사키(豊崎)·사고(佐護)·니이(仁位)·미네(峰) 다섯 지역의 급인이 후추로 올라와 세이잔지로 오니, 조선 도해선을 중지한다고 검사가 전했다. 그 후 마쓰오 쇼헤에(松尾莊兵衛)를 곁으로 불러 그의 본심을 듣고, 그 자리를 나와 칭찬하며 “그대의 뜻에 참으로 감복했다. 그러나 이미 막부가 결정할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몰래 시치에몬에게 원한을 풀려는 사태가 생기면, 도리어 태수(번주)를 위하는 길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쇼헤에가 “시치에몬이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죄인이 되어 에도로 올라가게 된 것이 저에게도 뜻밖의 일입니다. 어쨌든 저도 나중에 올라가니 에도에서 본체만체하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 오늘 저녁 사고 분에몬(佐護分右衛門)에게 시치에몬이 편지를 보내, 검사가 조사할 게 있으니 세이잔지로 오라고 전했다. 그러자 분에몬이 답하기를, ‘저는 몇 년 동안 시골에 있다가 최근에 후추로 올라온 터라 세상일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검사께서 질문하실 게 없을 겁니다’라고 했다. 다시 시치에몬이 ‘당신이 출석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니 서둘러 나오시오’라고 전했고, 세이잔지로 나왔다. 시치에몬·주에몬(十右衛門)·다로에몬(大郞右衛門)이 동석한 자리에서 검사가 “겐나 7년(1621)에 고쇼마루 송사를 파견했을 때 만사를 그대가 처리했는데 국서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알고 있는가?”라고 물으니, 분에몬이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에도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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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번은 조선의 마상재인(馬上才人)을 데려오기 위해 아리타 모쿠베에를 조선에 급파했다. 1634년 9월 에도를 출발한 아리타는 11월에 쓰시마를 거쳐 12월 말에 부산 왜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야냐가와잇켄으로 인해 에도에서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어 사건에 연루된 쓰시마의 관계자들이 에도로 소환되기 시작하자, 소환자 명단에 들어있던 아리타는 조선과 교섭을 하던 도중 서둘러 쓰시마로 돌아가 1635년 정월 쓰시마에서 에도로 향했다.(宗家記錄, 「裁判有田杢兵衛覺書」, 『分類紀事大綱』 34, 일본국회도서관 소장. 『邊例集要』 권1, 별차왜, 甲戌(1634) 12월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