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하 3341호묘(禹山下 3341號墓)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吉林省 集安市)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37 | 흑전원차(만주의대), 재등국태랑(좌우보간행회원) (黑田源次(滿洲醫大), 齋藤菊太郞(座右寶刊行會員)) | 봄, 가을에 조사가 예정(실제 기간은 미확인된 상태). 통화-집안간 철도공사가 계획되면서 통구 고분군의 중앙부가 파괴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발굴조사가 진행됨. 대표적으로 6월에 통구12호분, 9월에 오회분5호묘, 7월에 우산하3319호묘 등이 조사되었던 것이 소개됨. 해당 고분의 조사내용은 전하지 않지만 藤田亮策의 1940년 글에 의하면 당시 실측 작업이 이루어졌음. |
1938 | 등전량책, 야수건, 재등충 (藤田亮策, 野守健, 齋藤忠) | 4월(20일간 조사)에 진행됨. 197년 黑田源次의 발굴이 진행될 때 藤田亮策이 수일간 견학을 통해 수백 여기의 고분이 파괴될 상황임을 알게됨. 이후 조선고분연구회 사업의 일부로 만주 당국에 요청하여 일부분의 조사를 허용받고 조사를 진행함. 철도부설지구의 중심으로 생각되는 일부 고분만 배치도를 제작하고 고분의 사진과 실측도 역시 제작함. 다만 해당 고분은 1937년 조사를 참조하고 실측하지는 않음. 당시 만주국의 병사 막사가 있던 곳 뒤쪽 산 기슭에 두 기의 커다란 토분이 있다고 소개하였는데 오늘날 JYM3340호묘와 JYM3341호묘임. 三宅俊成(1975년 글)은 해당 고분을 東台子大土墳으로 명명함. |
구조특징
위의 고분 규모는 1997년 보고된 수치임. 1937년에는 한변 길이 35-27m, 높이 10m 이상으로 보고됨.
특대형봉토석실묘(1997년)로 평면형태는 방형임.
1938년 조사 당시(藤田亮策, 1940년 글 참조), 고분은 방형으로 네 모서리가 명료했음. 정상에 커다란 판석을 두었는데 원래 방형의 石條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됨.
전체 현황을 보면, 보존은 온전한 상태임. 단실묘로 연도(甬道)와 천정구조를 갖추고 있음. 천정은 모줄임식 고임천정임. 묘실은 모두 백회가 발라져 있어 정연하고 빤질빤질함.
특대형봉토석실묘(1997년)로 평면형태는 방형임.
1938년 조사 당시(藤田亮策, 1940년 글 참조), 고분은 방형으로 네 모서리가 명료했음. 정상에 커다란 판석을 두었는데 원래 방형의 石條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됨.
전체 현황을 보면, 보존은 온전한 상태임. 단실묘로 연도(甬道)와 천정구조를 갖추고 있음. 천정은 모줄임식 고임천정임. 묘실은 모두 백회가 발라져 있어 정연하고 빤질빤질함.
역사적 의미
藤田亮策은 JYM3340호묘와 JYM3341호묘는 대형봉토묘로 이들 고분 북쪽 100m 거리에 위치한 이수원자유적과 연관시켜 이수원자유적을 守陵 또는 제사와 관련 있거나 사원지라고 추정함.
자연환경
우산하 지역의 이수원자유적 남쪽 100m 거리에 위치.
집안시 박물관에서 북쪽으로 약 200m 거리에 위치.
집안시 박물관에서 북쪽으로 약 200m 거리에 위치.
참고문헌
· 藤田亮策, 「通溝附近の古墳と高句麗の墓制」『池內博士還曆記念東洋史論叢』 164, 座右寶刊行會, 1940
· 藤田亮策, 「通溝附近の古墳と高句麗の墓制」『朝鮮考古學硏究』 (再收錄), 高桐書院, 1948
· 三宅俊成, 「集安縣城附近の高句麗の遺跡と遺物」『東北アヅア考古學の硏究』, 國書刊行會, 1975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藤田亮策, 「通溝附近の古墳と高句麗の墓制」『朝鮮考古學硏究』 (再收錄), 高桐書院, 1948
· 三宅俊成, 「集安縣城附近の高句麗の遺跡と遺物」『東北アヅア考古學の硏究』, 國書刊行會, 1975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