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키와(筒瓦) [1]
유적명
集安 麻線溝 千秋墓(집안 마선구 천추묘)
구조특징
배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로 적고 있음. 남아있는 글자는 9자로, 그 중 6자가 판별이 가능. 오른쪽 행에는 “…□(浪?)趙將軍…”, 왼쪽 행에는 “□未在永樂…”이라고 새겨져 있음. 그 중 “浪”자는 전서풍(篆風)이 아직 남아있음. “未”자의 竪는 끝부분이 간신히 나왔음. “在”자의 수행(首橫)은 끝까지 통과하지 않아, “任”으로 틀려서 읽기 쉬움. “永”자는 같은 묘에서 출토된 “千秋萬歲永固”명 벽돌 중, Ac·Af·Ah형의 “永”자와 형태가 가까움. ‘永樂’은 고구려 제 19대왕인 광개토대왕의 號이므로, 왕호와 연결되어 있는 “未”는 응당 기년의 地支일 것임. ‘永樂’의 기간은 乙未년(395년)부터 丁未년(407년)까지 22년 임. 광개토대왕비문의 제4면 末數 제2행에 “惜國崗上廣開土境好太王盡爲祖先王墓上立碑”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광개토대왕대에 선왕의 무덤에 비를 세우고 무덤을 복구하면서 기와를 만들어 썼을 가능성이 있음. 이 명문기와가 바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음. 이 외에 광개토대왕은 정복전을 펼치면서, 여러 차례 樂浪郡 옛 땅의 신라 및 백제와 전투를 벌인 바 있음. 이런 기록을 고려할 때, “□浪”은 “樂浪”이라고 할 수 있음. 이 樂浪의 趙將軍은 歸順한 것인지, 포로인지 알 수 없음. “趙將軍”에서 漢의 姓이고 漢관직의 칭호라는 점, 무덤의 기와를 만드는 工匠과 監工에 漢人이 있었다는 점 등은 홀시할 수 사실임. 서체에서 예서풍이 보이고, 예리한 도구로 새겼으며, 수필(收筆)은 뾰족하고 날카로움. 파손된 기와의 오른쪽에도 글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 이 같은 추정이 맞다면, 기와의 새겨진 문구는 모두 3행으로 추정됨.
태토는 니질, 색깔은 회색임.
태토는 니질, 색깔은 회색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