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자산성내 병사주거지(山城子山城內 戍卒住居址)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吉林省 集安市)
조사내용
|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 1905 | 조거용장 (鳥居龍藏) | 산성자산성과 그 부근의 고분을 조사했으나 병사주거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음. 관련 발표로는 鳥居龍藏, 1914 「鴨綠江畔に於ける高句麗の遺跡」『東洋時報』137·140, 鳥居龍藏, 1914 「丸都城及國內城の位置について」『史學雜誌』25-7가 있음. |
| 1913 | 조선총독부(관야정, 곡정·금서문학사, 율산공학사) (朝鮮總督府(關野貞, 谷井·今西文學士, 栗山工學士)) | 병사주거지를 조사하였으나 창고 등으로 파악함. 관련 발표로는 關野貞, 1914 「滿洲輯安縣及び平壤附近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1·2)」『考古學雜誌』5-3·4가 있음. |
| 1936 | 지내굉, 흑전원차 박사, 소천현부, 삼상차남, 수야청일 (池內宏, 黑田源次博士, 小泉顯夫, 三上次男, 水野淸一) | 성벽과 성내 유적을 조사하면서 장대 뒤쪽의 건물지의 상황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조사하고 장대와 함께 실측도를 작성함. 관련된 발표는 池內宏·梅原末治, 1938 『通溝』上 日滿文化協會가 있음. |
| 1982 | 길림성박물관(이전복) (吉林省博物館(李殿福)) | 성벽, 성문, 성내 시설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하면서 병사건물지의 초석 배열 상태도 확인함. 관련 발표로는 李殿福, 1982 「高句麗丸都山城」『文物』1982-6 ; 1982 「集安高句麗山城子山城考略」『求是學刊』1982-1; 1994, 『東北考古硏究』(2) 中州古籍出版社등이 있음. |
| 2001~2003 |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김욱동, 이광일, 곡덕평, 가형, 왕소, 장옥춘, 조흔, 우립군, 유경빈)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金旭東, 李光日, 谷德平, 賈瑩, 王昭, 張玉春, 趙昕, 于立群, 劉慶彬)) | 집안시박물관의 王鵬勇, 林世賢, 董峰, 사평시문물관리위원회협공실 趙殿坤, 덕혜시문물보호소 孫東文, 구대시문물보호소 姚啓龍, 중국인민해방군 총장비부감탐측회총원 楊林春, 길림대학 문학원고고학계재교연구생唐淼, 張小輝, 李蜀蕾, 王樂, 華陽, 金君麗, 何景成 등이 조사에 참여함. 그 중 金旭東, 李光日, 王鵬勇, 唐淼, 趙殿坤, 孫東文, 姚啓龍 등은 환도산성의 조사, 발굴 및 자료정리 작업에 참여함. 성벽과 성곽시설, 성 내부의 건물지 등에 대해 대대적으로 발굴하고 정리했는데 병사주거지의 초석상황도 상세히 조사함. 다만 장대, 궁전지, 저수지 등과 달리 발골조사를 시행하지는 않음. 관련 발표로는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博物館 編著, 2004《丸都山城――2001~2003年集安丸都山城調査試掘報告》 文物出版社가 있음. |
구조특징
關野貞(1913)의 조사내용은 성내에는 본래 창고 등의 흔적으로 보이는 곳이 있음. 붉은색의 기와편이 산재해 있음. 대다수가 수키와와 암키와의 파편으로 문양은 국내성지나 동대자에서 나온 것과 같으며 고구려 말기의 것으로 보임.
池內宏(1936)의 조사내용은 장대와 연결된 북쪽의 언덕은 그 서쪽으로 성내 개울을 끼고 있으며 거기에 면한 벼랑에 수직으로 축조한 성벽이 있는데 아래에서 올라오는 적이 기어오를 수 없도록 막고 있음. 북쪽의 언덕 윗면에는 동서 폭 5·6칸, 남북 길이 7·8칸 정도 범위에 본래 위치에서 이동된 초석이 7·8개 남아있음. 붉은색의 기와편이 다량 산포해 있음.
李殿福(1982)의 조사내용은 길이 26m, 폭 8m 범위 내에 초석이 세 줄로 배열되어 있는데 모두 20여개임.
2004년 보고서의 기술내용은 유적이 이미 심하게 파괴되어 겨우 초석만 남아있음. 지표에서 초석 18개를 발견하였음. 18개의 초석은 대체로 장방형의 분포를 띠며 남북 길이 약 16m, 동서 너비 약 9m임. 남부의 초석은 비교적 띄엄띄엄 분포되어 있고 북부는 비교적 밀집 분포되어 있음. 일부 초석은 교란된 후 위치가 이동되었음.
북부 동측 가장자리에서 길이 0.35m, 너비 0.2m인 장방형 돌로 쌓은 구축물을 발견하였음.
북단에 초석 하나가 있는데 장방형의 건물에서 4.5m 떨어져 있음.
池內宏(1936)의 조사내용은 장대와 연결된 북쪽의 언덕은 그 서쪽으로 성내 개울을 끼고 있으며 거기에 면한 벼랑에 수직으로 축조한 성벽이 있는데 아래에서 올라오는 적이 기어오를 수 없도록 막고 있음. 북쪽의 언덕 윗면에는 동서 폭 5·6칸, 남북 길이 7·8칸 정도 범위에 본래 위치에서 이동된 초석이 7·8개 남아있음. 붉은색의 기와편이 다량 산포해 있음.
李殿福(1982)의 조사내용은 길이 26m, 폭 8m 범위 내에 초석이 세 줄로 배열되어 있는데 모두 20여개임.
2004년 보고서의 기술내용은 유적이 이미 심하게 파괴되어 겨우 초석만 남아있음. 지표에서 초석 18개를 발견하였음. 18개의 초석은 대체로 장방형의 분포를 띠며 남북 길이 약 16m, 동서 너비 약 9m임. 남부의 초석은 비교적 띄엄띄엄 분포되어 있고 북부는 비교적 밀집 분포되어 있음. 일부 초석은 교란된 후 위치가 이동되었음.
북부 동측 가장자리에서 길이 0.35m, 너비 0.2m인 장방형 돌로 쌓은 구축물을 발견하였음.
북단에 초석 하나가 있는데 장방형의 건물에서 4.5m 떨어져 있음.
역사적 의미
성내에는 원래 창고 등의 흔적으로 보이는 곳이 있어서 창고설이 있음(關野貞).
또 점장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물 기초로 추정되기도 함(池內宏).
이 건물지는 장대(전망대)를 지키는 병사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추정됨(李殿福). 이 유적은 장대와 겨우 22.6m 떨어져 있음. 장대를 지키는 병사주거지로 추측됨(2004보고서).
또 점장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물 기초로 추정되기도 함(池內宏).
이 건물지는 장대(전망대)를 지키는 병사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추정됨(李殿福). 이 유적은 장대와 겨우 22.6m 떨어져 있음. 장대를 지키는 병사주거지로 추측됨(2004보고서).
자연환경
점장대 북쪽의 평평한 언덕에 위치함(池內宏).
장대에서 북쪽으로 15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함(李殿福).
장대 북측에 위치함. 서쪽과 북쪽 양면은 골짜기와 잇닿아 있고 동쪽과 서쪽 양면은 경사가 완만한 평지임(2004보고서).
장대에서 북쪽으로 15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함(李殿福).
장대 북측에 위치함. 서쪽과 북쪽 양면은 골짜기와 잇닿아 있고 동쪽과 서쪽 양면은 경사가 완만한 평지임(2004보고서).
유물정보
多數의 赤瓦類.
참고문헌
· 關野貞, 「滿洲輯安縣及び平壤附近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一·二)」『考古學雜誌』 5-3·4, 日本考古學會, 1914
· 池內宏, 『通溝』 上: 滿洲國通化省輯安縣高句麗遺蹟, 日滿文化協會, 1938
· 池內宏, 『滿洲國安東省輯安縣高句麗遺跡』, 滿日文化協會, 1936
· 關野貞, 「滿洲國輯安縣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
· 李殿福, 「高句麗丸都山城」『文物』 1982-6, 1982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4
· 金旭東 主編, 『丸都山城:2001~2003年西安丸都山城調査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
· 池內宏, 『通溝』 上: 滿洲國通化省輯安縣高句麗遺蹟, 日滿文化協會, 1938
· 池內宏, 『滿洲國安東省輯安縣高句麗遺跡』, 滿日文化協會, 1936
· 關野貞, 「滿洲國輯安縣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
· 李殿福, 「高句麗丸都山城」『文物』 1982-6, 1982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4
· 金旭東 主編, 『丸都山城:2001~2003年西安丸都山城調査試掘報告』, 文物出版社,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