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하 636호묘(山城下 0636號墓, 弟塚)
출토지
길림성 집안시(吉林省 集安市)
연대
5세기로 추정됨.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13 | 조선총독부 촉탁(관야정, 금서룡, 곡정제일, 율산준일) (朝鮮總督府 囑託(關野貞, 今西龍, 谷井濟一, 栗山俊一)) | 9월~12월에 조사됨. 산성자 지역 조사 당시 형총(JSM0635)과 함께 제총을 확인하는데 관야정이 이들 고분을 각기 형총, 제총으로 명명함. 출판물로는 關野貞, 1914 「滿洲輯安縣及び平壤附近に於ける高句麗の遺蹟」 『考古學雜誌』5권 3-4호; 『朝鮮美術史』,(재수록)이 있음. |
1936 | 만주국 문교부(지내굉, 빈전경작, 매원말치, 흑전원차, 삼상차남) (滿洲國文敎部(池內宏, 濱田耕作, 梅原末治, 黑田源次, 三上次男)) | 9월 30일~10월 4일에 조사됨. 집안 주요 유적를 조사하는 가운데 산성자동방고분군을 매원말치가 조사함. 출판물로는 池內宏, 1938, 『通溝』(上), 梅原末治, 1939 「高句麗の墓制に就いて」『史林』24-1; 1947 『朝鮮古代の墓制』, 座右寶刊行會가 있음. |
1966 | 길림성박물관, 집안현문물보관소 (吉林省博物館, 集安縣文物保管所) | 통구고분군에 대한 조사 당시 해당고분을 산성하 636호묘(JSM0636)로 편호함. |
1983 | 집안시박물관(경철화, 손인걸, 장설암, 지용, 동장옥, 주영순) (集安市博物館(耿鐵華, 孫仁杰, 張雪岩, 遲勇, 董長玉, 周營順)) | 산성하 고분군을 보수 및 조사함. |
1993 | 산성하 고분군을 보수 및 정리조사함. | |
2004~2005 | 장복유, 손인걸, 지용 (張福有, 孫仁杰, 遲勇) | 조사기간, 조사기관 등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집안 경내의 고구려유적을 전면 재조사하면서 정리함. |
구조특징
평면은 방형이고 묘향 60°임. 1997년 조사시 한변의 길이 20m, 높이 5.7m였고 2007년 조사시 한변의 길이 22m, 높이 6.1m임.
1935년 조사 당시 현황(『통구』 및 『朝鮮古代の墓制』 참조)을 보면 4단의 계단이 남아 있는데 기단 한변의 길이가 75.6척(약 22.9m) 제4단 계단 한변의 길이가 45.6척(약 13.8m)임. 당시 2단 상면을 기저로 삼은 횡혈식 석실의 연도부가 보임. 연도의 천정을 보면 본래 제4단 계단위에 최상위 계단으로 제5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고분은 계단이 4단 현존하고 있음. 계단은 다듬어져 비교적 정연한 화강암돌로 축조하였으며 그 바닥부와 네 모서리의 계단은 거대한 돌을 사용하였는데 가장 큰 석재는 길이 3m 정도임. 계단은 일반적으로 중간과 상부의 석재는 약간 작으며 각 층 계단석의 상면의 가장자리는 다수 홈을 파서 상, 하 돌을 맞추었는데 이 홈은 상층의 축조석이 밖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작용을 함. 계단 안은 강자갈으로 메우며 강자갈은 가장 큰 것이 0.6m 정도이고 일반적으로는 0.2m 정도임.
제1단 계단은 3층으로 쌓았음. 제1층석은 높이 1m, 제2층석은 높이 0.65m, 제3층석은 높이 0.55m이며 전체 높이는 2.2m임. 3층의 축조석은 너비가 일반적으로 0.7m 정도이며 계단의 위면은 모두 약간 안으로 들여 있음. 동면 제1단 계단의 제1층계단석 바닥의 한변 길이 21.8m, 돌 상면의 가장자리 홈의 너비 0.18m이고 높이 0.03m임. 동면 제2층 석재 상면의 홈의 너비 0.14m, 높이 0.03m임. 제3층 계단석 상면에는 홈이 없음. 상면의 한변 길이 21m이며 묘 상부 석재의 압력으로 중부의 외이(外移)를 초래하였으며 최고 너비 0.6m임. 서면 제1단 계단의 제1층 계단석의 바닥 한변의 길이 22.7m, 제1층 및 2층 계단석 상면의 가장자리에는 홈이 파여 있으며 제3층 계단석 상면의 한변 길이는 21.85m임. 남면 제1단 계단의 제1층 계단석 바닥의 한변 길이가 22.1m이며 홈이 파여 있음. 제3층 계단석 상면의 한변 길이는 21.4m임.
제2단 계단은 제1단 계단 위에 축조되었으며 사면이 안으로 1.2m 들여 쌓았음. 제2단 계단축조석은 3층으로 제1층 계단석은 높이 0.6m, 제2층 계단석 높이 0.55m임. 제3층 계단석 높이 0.4m, 전체 높이 1.55m임. 제2단 계단은 돌이 제1단 계단보다 약간 작은 것을 사용하였으며 홈이 파여 있음. 제2단 계단의 동면 바닥의 한변 길이 19.3m, 상면의 한변 길이 18.4m임. 서면 바닥의 한변 길이 19.5m, 상면의 한변 길이 18.85m임. 남면 바닥의 한변 길이 19.1m, 상면의 한변 길이 18.4m임. 북면 바닥은 한변 길이 19.4m, 상면은 한변 길이 18.6m임.
제3단 계단은 제2단 계단의 위에 축조되며 네면 둘레는 안으로 1.2m 정도 안으로 들여 쌓았음. 제3단 계단은 총 3층 계단석으로 제1층 석재의 높이 약 0.6m, 제2층 석재의 높이 0.4m, 제3층 석재의 높이 0.35m 정도임. 전체 높이는 13.5m임. 또한 홈이 파여 있음. 제3단 계단의 동면 바닥의 한변 길이 16.2m, 상면의 한변 길이 15.7m임. 서면 바닥의 한변 길이 16.3m, 상면의 한변 길이 15.6m임. 남면 바닥의 한변 길이 16.4m, 상면 한변의 길이 15.9m임. 북면 바닥의 한변의 길이 16.6m, 상면의 한변의 길이 16.4m임.
제4단 계단은 제3단 계단 위에 축조하였는데 안으로 1.2m 정도 들여 쌓음.
서·남면 계단석은 이미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동면의 두 계단석과 북면의 제1단 계단석만이 보임. 계단석 높이는 0.5m이며 제4단 계단석 위에는 0.6m 두께의 봉석이 보이는데 봉석은 모두 강자갈임.
묘정의 중부에는 길이 및 너비 각기 5m, 깊이 1m의 방형 함몰갱이 있는데 광실 소재지로 추정됨. 묘실은 제2단 계단 위에 축조하였는데 지금은 이미 파괴됨. 현재 묘정의 함몰갱 서측에는 묘도가 축조되었는데 묘도의 상면에는 덮개돌 하나가 있음. 묘실 밖은 작은 강자갈으로 봉하였음. 조사 당시 묘 근처에서 황유도편과 철갑편 등이 수습됨.
1935년 조사 당시 현황(『통구』 및 『朝鮮古代の墓制』 참조)을 보면 4단의 계단이 남아 있는데 기단 한변의 길이가 75.6척(약 22.9m) 제4단 계단 한변의 길이가 45.6척(약 13.8m)임. 당시 2단 상면을 기저로 삼은 횡혈식 석실의 연도부가 보임. 연도의 천정을 보면 본래 제4단 계단위에 최상위 계단으로 제5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고분은 계단이 4단 현존하고 있음. 계단은 다듬어져 비교적 정연한 화강암돌로 축조하였으며 그 바닥부와 네 모서리의 계단은 거대한 돌을 사용하였는데 가장 큰 석재는 길이 3m 정도임. 계단은 일반적으로 중간과 상부의 석재는 약간 작으며 각 층 계단석의 상면의 가장자리는 다수 홈을 파서 상, 하 돌을 맞추었는데 이 홈은 상층의 축조석이 밖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작용을 함. 계단 안은 강자갈으로 메우며 강자갈은 가장 큰 것이 0.6m 정도이고 일반적으로는 0.2m 정도임.
제1단 계단은 3층으로 쌓았음. 제1층석은 높이 1m, 제2층석은 높이 0.65m, 제3층석은 높이 0.55m이며 전체 높이는 2.2m임. 3층의 축조석은 너비가 일반적으로 0.7m 정도이며 계단의 위면은 모두 약간 안으로 들여 있음. 동면 제1단 계단의 제1층계단석 바닥의 한변 길이 21.8m, 돌 상면의 가장자리 홈의 너비 0.18m이고 높이 0.03m임. 동면 제2층 석재 상면의 홈의 너비 0.14m, 높이 0.03m임. 제3층 계단석 상면에는 홈이 없음. 상면의 한변 길이 21m이며 묘 상부 석재의 압력으로 중부의 외이(外移)를 초래하였으며 최고 너비 0.6m임. 서면 제1단 계단의 제1층 계단석의 바닥 한변의 길이 22.7m, 제1층 및 2층 계단석 상면의 가장자리에는 홈이 파여 있으며 제3층 계단석 상면의 한변 길이는 21.85m임. 남면 제1단 계단의 제1층 계단석 바닥의 한변 길이가 22.1m이며 홈이 파여 있음. 제3층 계단석 상면의 한변 길이는 21.4m임.
제2단 계단은 제1단 계단 위에 축조되었으며 사면이 안으로 1.2m 들여 쌓았음. 제2단 계단축조석은 3층으로 제1층 계단석은 높이 0.6m, 제2층 계단석 높이 0.55m임. 제3층 계단석 높이 0.4m, 전체 높이 1.55m임. 제2단 계단은 돌이 제1단 계단보다 약간 작은 것을 사용하였으며 홈이 파여 있음. 제2단 계단의 동면 바닥의 한변 길이 19.3m, 상면의 한변 길이 18.4m임. 서면 바닥의 한변 길이 19.5m, 상면의 한변 길이 18.85m임. 남면 바닥의 한변 길이 19.1m, 상면의 한변 길이 18.4m임. 북면 바닥은 한변 길이 19.4m, 상면은 한변 길이 18.6m임.
제3단 계단은 제2단 계단의 위에 축조되며 네면 둘레는 안으로 1.2m 정도 안으로 들여 쌓았음. 제3단 계단은 총 3층 계단석으로 제1층 석재의 높이 약 0.6m, 제2층 석재의 높이 0.4m, 제3층 석재의 높이 0.35m 정도임. 전체 높이는 13.5m임. 또한 홈이 파여 있음. 제3단 계단의 동면 바닥의 한변 길이 16.2m, 상면의 한변 길이 15.7m임. 서면 바닥의 한변 길이 16.3m, 상면의 한변 길이 15.6m임. 남면 바닥의 한변 길이 16.4m, 상면 한변의 길이 15.9m임. 북면 바닥의 한변의 길이 16.6m, 상면의 한변의 길이 16.4m임.
제4단 계단은 제3단 계단 위에 축조하였는데 안으로 1.2m 정도 들여 쌓음.
서·남면 계단석은 이미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는 동면의 두 계단석과 북면의 제1단 계단석만이 보임. 계단석 높이는 0.5m이며 제4단 계단석 위에는 0.6m 두께의 봉석이 보이는데 봉석은 모두 강자갈임.
묘정의 중부에는 길이 및 너비 각기 5m, 깊이 1m의 방형 함몰갱이 있는데 광실 소재지로 추정됨. 묘실은 제2단 계단 위에 축조하였는데 지금은 이미 파괴됨. 현재 묘정의 함몰갱 서측에는 묘도가 축조되었는데 묘도의 상면에는 덮개돌 하나가 있음. 묘실 밖은 작은 강자갈으로 봉하였음. 조사 당시 묘 근처에서 황유도편과 철갑편 등이 수습됨.
내부규모 및 특징
묘도는 너비 1.4m, 남은 길이 0.8m, 현존 높이 0.5m.
덮개돌은 길이 2.7m, 너비 0.9m, 두께 0.45m.
덮개돌은 길이 2.7m, 너비 0.9m, 두께 0.45m.
역사적 의미
보고문에는(孫仁杰·遲勇, 2007) 해당 고분은 산성하편 중에서 비교적 대형임. 지리위치가 특수하며 고분의 축조법을 보면 장군총과 유사한 점이 있음. 묘주의 신분지위는 장군총 보다 낮으며 건축상 거칠고 묘실구조상 아직 석실계단에 진입하지 않았음. 그러나 일제 하 조사에 따르면 현실과 연도를 갖춘 석실구조로 계단석실적석총이었음을 알 수 있음. 계단석 축조 방법등을 고려해 볼 때 매장부는 석광보다는 석실이었을 것으로 판단됨.
자연환경
산성하 고분군 산성하편의 중부에 위치함. 통구하가 동에서 서로 흘러 환도산성을 지나 남쪽으로 꺾여 압록강으로 유입되며 환도산성 남측에는 비교적 넓게 펼쳐진 하곡지가 형성됨. 이곳에 고구려 고분이 근 400여기 분포함. 해당고분은 이 일대 고분가운데 대형고분에 속함.
해당고분의 북으로 약 30m에 JSM0635호묘가 있고 서쪽으로 약 30m에 JSM0633호묘가 있으며 남쪽으로 약 60m에 통구하가 있음.
해당고분의 북으로 약 30m에 JSM0635호묘가 있고 서쪽으로 약 30m에 JSM0633호묘가 있으며 남쪽으로 약 60m에 통구하가 있음.
참고문헌
· 關野貞, 「滿洲輯安縣及び平壤附近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一·二)」『考古學雜誌』 5-3·4, 日本考古學會, 1914
· 關野貞, 「滿洲國輯安縣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
· 梅原末治, 「高句麗の墓制に就いて」『史林』 24-1, 京都大學史學硏究會, 1939
· 梅原末治, 「朝鮮古代の墓制」, 座右寶刊行會, 1947
· 三宅俊成, 輯安縣城附近の高句麗の遺跡と遺物, 『東北アジア考古學の硏究』, 國書刊行會, 1975
· 吉林省博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 永島暉臣慎, 「集安の高句麗遺跡」『好太王碑と集安の壁畵古墳』, 木耳社, 1988
· 三上次男, 「東滿風土雜記」『高句麗と渤海』, 吉川弘文館, 1990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
· 關野貞, 「滿洲國輯安縣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
· 梅原末治, 「高句麗の墓制に就いて」『史林』 24-1, 京都大學史學硏究會, 1939
· 梅原末治, 「朝鮮古代の墓制」, 座右寶刊行會, 1947
· 三宅俊成, 輯安縣城附近の高句麗の遺跡と遺物, 『東北アジア考古學の硏究』, 國書刊行會, 1975
· 吉林省博物志編委會, 『集安縣文物志』,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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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通溝古墓群1997年調査測繪報告』, 科學出版社, 2002
· 孫仁杰·遲勇, 『集安高句麗墓葬』, 香港亞洲出版社,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