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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석호관애(石湖關隘)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130
  • 위치(출토지)
    通化縣 石湖鄕 高麗城村(公益村)
  • 지역
    통화(通化市)
  • 유형
    성곽>관애
  • 형태사항
    전체 길이 291m 
출토지
통화현 석호향 고려성촌(공익촌) (通化縣 石湖鄉 高麗城村(公益村))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2년 10월통화현문화관
(通化縣文化館)
유적 발견 및 현황 조사, 『通化縣文物志』게재함.
1985년 4월통화현문물보사대
(通化縣文物普査隊)
유적 현황 재조사하여 『通化縣文物志』게재함.
구조특징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함. 남에서 서로 25° 기울어진 남북 방향. 아래쪽 너비 12m, 위쪽 너비 1.5-3m, 안쪽 높이(內高) 3m, 바깥쪽 높이(外高) 5m(기단 너비 12-16m, 높이 1-2.5m: 國家文物局 主編).
지방도로에 의해 절단된 성벽 중간 부분의 횡단면을 통해 성벽의 축조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데, 성벽 하단에 강돌과 깬돌로 기초부를 다진 다음, 양쪽 가장자리 하단에 비교적 큰 절석이나 강돌을 놓고 그 안쪽에는 흙을 다져서 성벽을 쌓아올리거나 흙과 잔돌을 섞어 성벽을 축조함. 다만 성벽 상단부에도 비교적 큰 절석이 노출된 것으로 보아 성벽의 중심부를 흙이나 잔돌만으로 축조한 것 같지는 않음. 성벽의 축조재료는 성벽 안팎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나 흙을 주로 사용했음. 가령 성벽 동단부의 경우 산기슭에 흘러내린 산돌을 많이 이용한 반면, 성벽 중간 부분의 경우 성벽 안팎의 흙과 더불어 강돌이나 자갈을 많이 사용했음.
역사적 의미
관애를 방어하기 위한 치와 참호가 大羅圈河 하류 방면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하류 방면인 혼강유역에서 침입해 오는 적을 방어하던 군사시설로 추정됨. 따라서 북쪽 20㎞에 있는 二道溝門關隘와 함께 大羅圈溝河를 거슬러 통구분지로 향하는 교통로를 차단하던 관애로서 大羅圈溝河 일대에서 도성 외곽의 弧形防禦線을 구성한 것으로 추정됨[余昊奎].
북쪽으로부터 침입해오는 적을 방어하고 국내성을 보위하는데 일정한 전략적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고, 고구려 북도상의 주요 군사시설로 추정하기도 함[吉林省文物志編委會, 李殿福].
자연환경
小八道溝河가 大羅圈溝河와 합류하는 지점임. 高麗城村은 石湖鄕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3.5㎞ 거리로 관애 남쪽 10㎞에 老嶺정거장, 북쪽 20㎞에 二道溝門關隘가 있음. 通化-集安 철로가 관애의 동북 모서리를 통과하며, 관애 중앙으로는 石湖鄕 公益村에서 老嶺으로 나가는 지방도로가 통과하고 있음. 大羅圈溝河가 노령산맥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渾江으로 유입되는데, 大羅圈溝河 상류 유역에 石湖鄕 公益村이 있음. 이 마을 동쪽으로 2.5㎞ 지점에서 小八道溝河와 大羅圈溝河가 모인 뒤 다시 북쪽으로 흘러가는데, 합류지점의 2㎞ 거리에 관애가 있음. 관애가 위치한 小八道溝河와 大羅圈河(大羅圈溝河)의 합류지점 양 옆으로는 해발 900m의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음.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通化縣文物志』, 1987
· 國家文物局 主編, 『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文物出版社, 1992
· 李殿福(車勇杰·金仁經 譯), 『中國內의 高句麗遺蹟』, 學硏文化社, 1994
· 余昊奎, 「通化 建設山城」『高句麗 城』 Ⅰ(鴨綠江 中上流篇), 國防軍史硏究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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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관애(石湖關隘) 자료번호 : ku.d_0001_0040_0040_0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