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남 휘발성(輝南 輝發城)
출토지
통화시 휘남현 휘발성진 휘발성
연대
명대로 추정
조사내용
연도 | 조사기관 | 조사현황 |
1957년 5월 | 길림성 문관회(吉林省 文官會) | · 1957년 5월, 吉林省 文官會는 輝發縣 文敎科와 만나 휘남현문물보사대를 조직, 휘발현 및 휘발성에 대하여 고고 조사를 진행하였음. 이와 더불어 문물을 다량 채집하였음. 그중에 돌도끼(石斧), 석제 그물추(石網墜), 토제 그물추(陶網墜), 토기편(陶器片), 암키와(板瓦), 또 일부 瓷器片이 있음. |
1960년 | 통화지구 문물보사대(通化地區文物普査隊) | · 1960년 통화지구 문물보사대는 또 휘발성에 대하여 조사를 진행하였음. 성내에서 三楞形의 골제 화살촉(箭頭). 소형 철제 칼(鐵刀), 칼집(刀鞘箍), 刀護手, 글자가 없는 동전 및 돌호미(石鋤), 돌도끼(石斧), 돌괭이(石鎬) 등이 발견됨. 이로써 휘발성은 길림성 제1 중점문물보호단위가 되었음. |
1962년 10월 | 길림성문물관리위원회(吉林省文物管理委員會) | · 1962년 10월, 길림성문물관리위원회 재차 휘발성에 대하여 조사, 측량, 기록을 진행하였음. 아울러 비교적 풍부한 유물을 채집하였는데 생활용구, 건축재료, 생산공구, 무기 및 장식품 등을 포괄함. |
1986년 6월 | 휘남현문물보사대(輝南縣文物普査隊) | · 1986년 6월, 휘남현문물보사대는 선후 두 차례 휘발성에 가서 조사, 측량, 기록, 사진촬영을 진행하였음. 자연으로 인한 휘발성의 파괴된 성벽 구간에 대해 세밀한 연구를 진행하였고 비교적 신자료를 획득하였음. 이에 따라 휘발성의 축조 연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음. · 성급 문물보호단위. |
구조특징
휘발성은 내성과 중성, 외성 3개의 성으로 이루어진 복곽식 산성이다. 2010년까지 조사 발굴을 통해서 정리하지 못했던 내성 문지등에 대하여 2013년 최종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내성과 외성의 성벽은 모두 한 번 축조한 것이며, 중성 성벽은 일찍이 두 차례의 증축을 거쳤음을 파악하였다. 하지만 내성, 중성, 외성을 건축할 때의 순서는 명확하지 않다. 또 성벽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내, 중, 외 3갈래 성벽을 처음 쌓은 연대는 모두 명대 중기보다 이르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또 내성 문지의 발굴을 통해 문지는 초기, 말기 두 시기의 문길(門道)을 포괄함을 확인하였다. 중성 내의 시굴 작업을 통해 유적은 모두 명대(明代)에 속함을 확인하였다.
역사적 의미
휘발하의 휘발성은 내성과 중성, 외성 등 3개 성이 하나로 구성된 복곽식 산성으로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주로 휘발성의 건축주체 혹은 초축연대에 대한 관심이었는데, 그 시기를 고구려로 보거나, 요, 금으로 보는 견해, 명대로 보는 견해, 청시기로 보는 견해 등 고구려 이후 거의 전시기에 대하여 그 가능성을 주장해왔었다.
가장 최근의 2013년 발굴조사에서 성벽을 절개하여 성벽 내부를 조사한 결과 출토유물 등을 토대로 성벽이 처음 축조된 것은 명대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였고, 내성 문지에 대한 조사 결과도 이와 같았다.
가장 최근의 2013년 발굴조사에서 성벽을 절개하여 성벽 내부를 조사한 결과 출토유물 등을 토대로 성벽이 처음 축조된 것은 명대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였고, 내성 문지에 대한 조사 결과도 이와 같았다.
자연환경
성의 서쪽으로는 휘발하와 잇닿아 있다. 남쪽으로는 황니하(黃泥河)에 잇닿아 있으며, 휘발산에 의지하여 축성하였다. 같은 구역 안에 내성, 중성, 외성이 포괄되는 구조이다. 내성과 중성은 성의 남부에 위치하며, 그 중에 내성은 휘발산 정상에 위치한다. 중성은 휘발산 동측의 평평하고 완만한 산기슭 비탈지에 위치하며, 외성은 산 아래 하반의 평야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정보
명대 유물이 출토됨.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2014, 『東北史地』20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