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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석대자산성 고분군2004SSM2(石臺子山城 古墳群2004SSM2)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
  • 위치
  • 유물번호
    S000929
  • 위치(출토지)
    瀋陽市 棋盤山
  • 지역
    심양(瀋陽市)
  • 유형
    고분>봉토석실분
  • 형태사항
    3점  , 석실 
출토지
심양시 기반산(沈陽市 棋盤山)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2002요령성문물고고연구소, 심양시문물고고연구소
(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沈陽市文物考古硏究所)
심양시문물고고연구소 소속의 고강(顧罡), 이용빈(李龍彬), 소붕력(蘇鵬力), 주한빙(朱寒氷) 등이 연구에 참가함. 조사기간은 2002년 5월부터 2003년 10월까지임.
조사 내용은, 석대자산성 주위의 비교적 넓은 범위에 대한 고고조사를 진행하여 산성 주위에 석축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음. 고분 대다수는 이미 기초공사 또는 도굴자에 의해 파괴당한 상태였으므로, 이 고분들에 대한 구제 발굴을 실시하고, 총 62기의 고분을 정리함. 모두 봉토석실묘임. 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심양시문물고고연구소, 2008, 「심양시석대자산성고구려묘장2002-2003년발굴간보」, 『고고』2008-10를 통해 발표되었음.
2004심양시문물고고연구소
(沈陽市文物考古硏究所)
심양시문물고고연구소 소속의 고강(顧罡), 이용빈(李龍彬), 소붕력(蘇鵬力), 주한빙(朱寒氷) 등이 연구에 참가함. 조사내용은, 석대자산성 고분구역의 분포정황을 확정하고 석대자산성 주위 약 2㎞의 구역 범위에 대해 고고조사를 진행하여 산성 주위에 분산된 고분군을 발견함. 그 형식은 2003년에 발견한 산성 부근 고구려 고분과 유사함. 이때 조사 발굴한 6기 고분에 대해 구제 발굴을 진행함. 모두 봉토석실묘임. 심양시문물고고연구소, 2006, 「2004년도심양석대자산성고구려묘장발굴간보」, 『북방문물』2006-2를 통해 발표되었음.
구조특징
2004년 조사보고서는 심양시문물고고연구소에 의해 2006에 출판되었음. 발굴한 6기의 고분은 모두 봉토석실묘임. 축조방법은 먼저 산비탈 위에 무덤이 놓일 범위(墓壙)를 평평하게 고르고 난 후에 약간 정연한 쐐기형(楔形) 또는 불규칙한 돌로 묘실을 조성하고, 일부 무덤은 백회를 바름. 분구(墓頂)는 모두 훼손되어 형식이 불명확함. 묘실 네 벽은 돌로 정연하게 쌓았으며 묘실 바닥은 대다수 산흙(山皮土) 또는 고운 황토가 있음. 무덤의 평면은 장방형, 연도가 중앙에 있거나(鏟形) 또는 치우쳐(刀形)있음. 그 가운데 연도가 없는 장방형묘가 2기, 산형묘 2기, 도형묘 2기임. 무덤 방향은 대다수 170-195°임.
본 무덤의 방향은 170°임. 고분은 도굴당한 상태임. 묘실과 적석봉토분구로 이루어졌음. 사용된 석재는 석회암이며, 묘실은 정연하게 축조되었으며 주위 적석은 흩어져 있었음. 봉토는 원형에 가까운 형태(近圓形)이며 돌을 쌓았고, 돌 사이에는 고운 황토로 메워져 있음. 묘실 평면은 장방형으로 길이 2.3m, 너비 1.1m, 잔존 깊이 0.6m임. 네 벽에 사용된 석재는 약간 가공을 거쳤으며 층층히 쌓았는데 벽면이 비교적 정연하며, 동측 묘실벽(장벽)은 비교적 심하게 파괴당하였으며, 서벽에 붙여서 작은 돌로 장방형 시상(屍床) 하나를 축조하였음. 시상 길이는 묘실과 같고 너비는 0.6m이며 가장자리는 가공을 거친 돌로 쌓아 비교적 정연함. 묘실 바닥은 인공을 거쳐 정연하며, 비교적 순정한 황토로 되어 있는데 백회를 벽면에 바른 것이 보이지 않음. 장구는 보이지 않음.
발견된 유골은 보존상태가 좋지 못한데 발견한 골반(盆骨) 및 묘실 내의 유골의 분포정황에 근거하면 해당 무덤 안에 적어도 4구의 인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보존이 상대적으로 완전한 2구 중 1구는 시상 동측에 위치하는데 유골이 비교적 건장하여 부분적으로 유골이 시상 밖에 위치하며 우측의 팔다리뼈(肢骨)는 심하게 손상되었음, 다른 1구는 시상 중간에 위치하며 유골은 비교적 가늚. 이 2구는 모두 앙신직지장(仰身直肢葬)이고 그 나머지 유골은 묘실 서북 모서리에 어지럽게 놓여 있었음. 부장품은 심발형토기(陶罐), 귀걸이장식(耳墜飾) 등이 있음.
내부규모 및 특징
길이 2.3m, 너비 1.1m, 잔존 깊이 0.6m
역사적 의미
2004년 조사는 다음과 같음. 먼저, 매장풍속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음. 명확한 장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음. 대다수 무덤에는 돌로 시상을 만들지 않았으며, M2와 M3만이 석축의 장방형 시상이 있음. 2003년 발굴한 석대자산성 서측 구도구(九道溝) 고분에서도 장구가 보이지 않고, 석축 시상이 적아서, 양자를 함께 고려해 볼 때 장구를 사용하지가 않았다고 추정됨. 6기의 무덤에서 모두 인골이 남아 있으며, 심한 도굴과 붕괴로 인해 인골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비교적 적음. 초보적 인골 감정과 통계 분석에 의하면 단인장 수량은 M1과 M4 2기만 있으며 나머지 4기는 모두 다인장임. M1의 인골(葬骨)은 도굴 교란에 의해 하지(下肢) 부분만 남아 있으나 앙신직지장(仰身直肢葬)이며, 초보적 분석으로 성인 여성임을 판별 할 수 있음. 정상적 사망에 의한 장례라 할 수 있음. M4는 두골(顱骨)만이 남아 있으며 기타 뼈들은 존재흔적이 보이지 않아 외부특징의 초보적 분석에 의하면 성인남성이며, 출토된 등자와 결합해 보면 해당 묘주는 비정상적 사망으로 추정됨. 다인장 가운데 M5 및 M6은 쌍인장(雙人葬)으로 뼈는 보존이 비교적 좋지 않지만 2개체였다고 판별됨. M2는 다인합장으로 초보적 감정으로는 4개체인데 2구는 노년 개체로 남녀 각 1구로 앙신직지장이며 보존은 비교적 양호함. 다른 2구는 성인개체로 모두 남성이며, 지골(肢骨)은 비교적 어수선하게 놓아두었으나 묘실 서북부에 집중적으로 놓여 있는데 묘장이 일찍이 새롭게 열려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임. 해당 무덤은 2차장의 현상이 존재하여 일가족 합장묘인지 아닌지 주목할 필요가 있음. M3은 3인합장으로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인데 모두 성인 개체임. 교란당한 인골은 모두 앙신직지장이며, 그 머리 방향은 모두 대체로 남향이며, 부장품 호(陶罐)는 대다수 매장자의 머리방향(頭部)에 위치함. 이는 당시 일종의 장속으로 추정해볼 수 있음.
묘장의 성질 및 연대, 주위 관련 유적과의 관계는 다음과 같음. 해당 무덤의 구조특징과 부장품의 분석에 의하면 2003년 발굴한 구도구 고구려 무덤 형식 및 부장품과 기본적으로 동일함. 이들 무덤의 시대는 구도구 고구려 고분군의 시대와 일치한다는 추정에 의하면 고구려 말기에 해당함. 고분군은 성급(省級) 문물보호단위 석대자산성 이북 약 1.5㎞ 범위 안에 위치하며, 출토한 3점의 도관과 석대자산성 출토의 동류 토기와 특징이 유사하여 양자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줌. 따라서 석대자산성의 무덤으로 인정됨.
2002~2003년 조사는 다음과 같음. 먼저 묘장 형식과 매장 풍속은 다음과 같음. 정리된 무덤 02ⅡM3의 묘실바닥이 한 층의 백색 석회암제 할석이 고루 평평하게 깔았고, 02ⅡM4와 03ⅢDM26 묘실바닥이 불규칙한 작은 돌을 평평하게 깔았던 것 등을 제외하면 그 나머지 무덤의 묘실 바닥에는 모두 고운 황사토(黃沙土)를 얇고 고르게 한 층을 깔았음. 이들 무덤의 묘실 바닥은 일반적으로 특수 가공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음. 다수의 무덤에서 인골이 발견되는데 이들 인골은 대다수 묘실 바닥 황사토 위에서 확인됨. 03ⅢXM16에서 발견된 장방형 석축 시상(屍床)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무덤에서는 어떤 장구(葬具)도 흔적이 보이지 않음. 이를 통해 해당 묘장들은 일반적으로 시상을 축조하지 않았고 장구 역시 사용하지 않았다고 추정됨. 도굴과 붕괴로 파괴되어 온전한 인골은 비교적 적음. 초보적 인골 감정과 통계를 통해 단인장 33기, 다인장 29기임. 단인장은 대부분 제형묘 또는 장방형묘이며, 그 가운데 교란되지 않은 인골은 모두 앙신직지장이며, 머리는 서남을 향하고 있음. 다인장은 쌍인합장한 03ⅢDM4가 제형묘인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산형묘와 도형묘이며 게다가 산형묘가 다수를 차지함. 다인장 인골은 다수가 교란되었으나 매장자 머리 방향은 대다수 서남 또는 남쪽을 향해 있고 있는 것을 판별할 수 있으며, 대다수 무덤은 2차장 현상을 보임. 쌍인합장묘는 비교적 명확한 것이 03ⅢDM4로 성년 남성과 성년 여성을 합장하였음. 남성은 동쪽에 위치하고, 여성은 서쪽에 위치하여 부부합장묘로 추정됨. 03ⅢDM5는 03ⅢDM4 서쪽 약 1m 지점에 위치하고 무덤 방형과 거리가 모두 03ⅢDM4와 비교적 유사하고 근접해 있으며, 규모가 매우 적으며, 유아 무덤이라는 점에서 두 무덤은 일정한 친속관계가 있는 무덤으로 추정됨. 도굴과 붕괴로 파괴되어 온전한 인골은 비교적 적음. 초보적 인골 감정과 통계를 통해 단인장 33기, 다인장 29기임. 단인장은 대부분 제형묘 또는 장방형묘이며, 그 가운데 교란되지 않은 인골은 모두 앙신직지장이며, 머리는 서남을 향하고 있음. 다인장은 쌍인합장한 03ⅢDM4가 제형묘인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산형묘와 도형묘이며 게다가 산형묘가 다수를 차지함. 다인장 인골은 다수가 교란되었으나 매장자 머리 방향은 대다수 서남 또는 남쪽을 향해 있고 있는 것을 판별할 수 있으며, 대다수 무덤은 2차장 현상을 보임. 쌍인합장묘는 비교적 명확한 것이 03ⅢDM4로 성년 남성과 성년 여성을 합장하였음. 남성은 동쪽에 위치하고, 여성은 서쪽에 위치하여 부부합장묘로 추정됨. 03ⅢDM5는 03ⅢDM4 서쪽 약 1m 지점에 위치하고 무덤 방형과 거리가 모두 03ⅢDM4와 비교적 유사하고 근접해 있으며, 규모가 매우 적으며, 유아 무덤이라는 점에서 두 무덤은 일정한 친속관계가 있는 무덤으로 추정됨. 다인합장묘 중에서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교란되지 않은 인골은 모두 앙신직지장으로 그 머리가 묘문을 향하고 있음. 이는 당시 이 지역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장속으로 추정됨. 많은 무덤에서 인골이 모여있거나 또는 흩어져 분포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2차장 현상으로 추측됨. 예를 들면 02ⅡM1의 5개 개체는 묘실 서측이 비교적 온전한 앙신직지장 개체로 초보적 감정으로는 성인 여성으로 보며, 다른 4개 개체의 두개골과 인골은 모두 온전한 개체의 동측에 무지가 흩어져 있음. 이는 해당묘가 2차장의 현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으며 한 가정의 합장묘로 추정됨. 03ⅢXM2의 묘문 입구에는 소량의 말 넓적다리(馬腿骨)이 놓여 있는데 정리한 무덤 중에서 유일하게 말뼈가 매장된 무덤임. 일정한 장속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연구가 기대됨. 03ⅢDM22에서는 묮의 왼손에서 5매의 동제 반지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가운데 집게손가락(食指)에는 상감한 반지 1매를 착용했고, 가운데손가락(中指)와 넷째손가락(無名指)에는 형식이 다른 2매의 반지를 각각 착용했음. 과거 발견한 무덤중에 이런 착용방식과 현상은 아직 비교적 드문 편이며, 장식 역시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진일보한 연구를 기대함. 이 밖에 무덤에서 출토한 토기의 다수는 매장자의 머리 부분에 위치하는데 이것 또한 당시 부장 토기을 놓는 일종의 습속이라 할 수 있음.
고분 연대·성격 및 주변 관련유적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음. 무덤 연대에 관해 보고서에서는 해당 무덤들에서는 명확한 기년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절대연대를 고증하기는 어려움. 무덤 형식과 부장품의 종합분석을 통해 그 상대연대를 추정 가능함. 해당 무덤 중 산형묘와 도형묘의 형식은 무순 시가묘지(施家墓地)의 형식과 거의 동일하며, 출토부장품 가운데 동제 반지는 시가묘지 출토품과 유사함. 03ⅢXM3 출토의 동제 팔찌, 03ⅢXM2와 03ⅢXM16 출토의 동제 귀걸이는 무순 관산댐 M3에서 출토된 동제 팔찌 및 동제 귀걸이와 형식 및 크기가 기본적으로 동일함. 귀걸이의 수하식의 형식 역시 고구려 말기의 귀걸이와 서로 동일함. 03ⅢXM4에서 출토된 쌍차형(雙叉形) 철촉은 무순 고이산산성(高爾山山城)과 집안 출토의 쌍차형 철촉의 형식과 유사함. 무순 지구의 시가묘지와 관산댐 M3 및 M4의 시대는 고구려 중만기로 인정되므로 이들 무덤의 연대 역시 고구려 중만기로 추정할 수 있음(2008). 강현숙은, 다인의 다차에 걸친 합장이며, M4호분에서 출토된 등자 그리고 추형 수하식이 달린 귀걸이가 무순 시가고분이나 돈화 육정산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여서 발해시기로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음(2009). 무덤의 규모는 비교적 작고 부장품은 매우 적거나 심지어 없으며, 기물(器物) 유형 역시 비교적 간단함. 소수의 무덤에서 12건의 장식품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토기임. 이를 통해 이들 무덤은 대다수 일반 평민의 무덤으로 볼 수 있음. 무순 시가묘지는 그 서면 약 1.5㎞의 고이산 산성의 부속 묘지로 인정되며, 시대는 고구려말기임. 석대자산성(石臺子山城) 부근의 고구려 무덤은 전국중정문물보호단위(全國中點文物保護單位) 석대자산성 서측 또는 서북측 약 1.5㎞의 범위 안에 위치함. 그 가운데 03ⅢXM4에서 출토된 호(陶罐)·철촉(鐵鏃) 및 무덤 출토의 동제 팔찌와 동제 귀걸이는 부근의 석대자산성 유적에서 최근(近年)에 출토된 동일 유형 기물과 동일하거나 유사함. 이는 양자 사이의 관계가 친밀함을 보여주며, 이 무덤이 석대자산성의 부속무덤이라는 사실이 인정됨.
본 고분군의 무덤과 기타지구 무덤을 비교하였음. 석대자산성 부근의 고구려무덤은 모두 무벽화 봉토석실묘이며, 그 형식구조는 과거 요녕성 및 길림성 경내(境內)에서 발견된 고구려 중만기의 무벽화 봉토석실묘와 유사함. 요령성 경내의 이른 시기에 발견된 무순 전둔(前屯)·와혼목(洼渾木) 두 지역의 고구려무덤과 근년 발견된 무순 시가묘지가 대표적임. 길림성 경내에서 발견된 집안 우산(禹山)·산성하(山城下)·칠성산(七星山)·마선구(麻線溝) 등지의 무벽화 고구려봉토석실묘는 모두 평면이 도형(刀形)·선형(鏟形)·장방형을 띠고 있음. 축조방법은 모두 먼저 구덩이(墓壙)를 파고, 이후 묘실을 축조하고 다시 봉토를 함. 이들 무덤의 발견은 진일보한 고구려 말기 봉토석실묘의 구조와 형식에 대한 진일보한 연구를 위해 신자료를 강화시키었으며, 고구려산성 부근의 부속무덤을 탐구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였음. 석대자산성 부근의 이런 고구려 봉토석실무덤의 형식과 축조방식은 과거 발견한 발해 봉토석실무덤들과 평면형식과 축조방식상 많은 유사점이 있음. 예를 들면 석대자산성에서 발견한 산형묘 형식구조는 길림성 돈화(敦化) 육정산(六頂山) M205-M207과 M215 등 발해무덤의 형식구조와 거의 완전 동일하며, 게다가 모두 묘도 양벽에 대석판을 곧게 세우는 방법이 있음. 그 가운데 육정산 M205와 M206 묘실 바닥을 각각 판석(板石)과 쇄석(碎石)으로 평평하게 까는 방법이 석대자산성에서 발견한 02ⅡM3 묘실 바닥에는 쇄석으로 평평하게 깔고 02ⅡM4와 03ⅢDM26 묘실바닥은 판석으로 평평하게 까는 방법과 완전히 일치함. 이밖에 육정산 M103, M104, M203 등의 무덤 형식구조는 석대자산성에서 발견한 장방형묘의 형식구조와 유사함. 이들 모두 고구려 말기 봉토석실묘와 발해 봉토석실묘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한 새로운 실마리임.
자연환경
M1 동북 18m 지점에 위치함.
유물정보
심발형토기(陶罐) 1점, 귀걸이장식(耳墜飾) 1점
참고문헌
· 沈陽市文物考古硏究所, 「2004年度沈陽石臺子山城高句麗墓葬發掘簡報」『北方文物』 2006-2, 2006
· 李龍彬, 「石台子高句麗山城及墓葬發現與研究」 吉林大學碩士學位論文, 2006
· 李龍彬·蘇鵬力·朱寒冰, 「瀋陽石台子山城高句麗墓葬2002~2003年發掘簡報」『考古』 2008-10, 2008
· 강현숙, 「高句麗 故地의 渤海 古墳 - 中國 遼寧地方 石室墳을 中心으로」『韓國考古學報』 72, 한국고고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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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대자산성 고분군2004SSM2(石臺子山城 古墳群2004SSM2) 자료번호 : ku.d_0001_0090_0010_0040